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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으로 만들어낸 동양의 '정신성'

입력 : 2015-10-06 20:36:40 수정 : 2015-10-07 08: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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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 파리 기메박물관서 韓작가 첫 전시 유럽 최대 아시아 미술관인 파리 기메박물관의 최상층 돔 홀이 ‘숯의 화가’ 이배(59) 작품으로 채워졌다. 바닥은 한지를 장판 배접하듯이 붙여 안방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위에 숯덩이 설치작품을 덩그러니 놓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돔 구조와 어울려 어느 동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원시인이 나무에 불을 붙여 이제 막 취사를 끝낸 흔적 같기도 하다.

“라스코 동굴을 떠올려 봤습니다. 밖에서 사냥 등 일상생활을 하고 밤에 동굴에 들어와 낮에 접했던 이미지들을 벽에 그렸지요. 밖에서 구한 물건도 가지고 들어왔을 겁니다. 원시문화의 탄생이지요. 동굴을 문화적 산실로 해석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기메박물관에서 한국 작가론 첫 전시를 갖는 이배 작가. 그는 숯 설치작품을 통해 동양의 먹선과 여백의 미가 서양인들에게 프리미티브한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하고 있다.
그는 특히 기메가 세계적 간다라 조각 소장처라는 점에 주목했다. 작품 전체의 성스러움에 끌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작품에선 사람 냄새가 나지만, 간다라 불상은 사람이 만들었어도 사람 냄새가 빠지고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다시 말해 영적인 개성이 있어요. 이런 조건에서 내가 뭘해야 할까 고심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숯 설치작품이지요.”

그는 한국 소나무 숯덩이를 고향 청도에서 가져왔다. 숯이란 물성이 일상성을 벗어버린, 마지막 남은 순수한 미네랄적인 요소라는 점에 주목했다. 숯은 나무의 가장 순수한 상태로 정결성이 있다. 서양의 바비큐 구이용 숯이 아닌 한국의 먹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췄다. 사찰이나 집을 지을 때도 숯을 깔아 터를 다졌고 아이가 태어나면 숯을 금줄에 달아 대문에 걸었다. 장 담근 항아리에도 숯은 놓였다. 검정숯의 생활문화다.

“결국 재료와 문화적 느낌을 접합시킨 것입니다. 매개로서 숯 물성을 이용해 표현해 본 것이지요. 문명화된 파리에서 프리미티브한 재료를 갖다 놓는 것 자체가 세리머니로 받아들여져요. 그렇다고 너무 동양적인 냄새만 피우면 서양인들은 거리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를 했습니다.”

파리에서 25년간 머물며 작업하고 있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청도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영상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화선지가 아닌 캔버스에 숯으로 그는 그림을 그린다. 그것도 동양적 붓선을 그린다. 숯가루에 안료를 섞어 붓질을 한 뒤 그 위에 아크릴 미디엄을 칠하고 또 붓질을 하고 이 과정을 세 번에서 다섯 번 반복한다. 이를 통해 먹이 캔버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시각적 효과를 얻는다. 그에게 먹의 원형인 숯은 물질이면서도 물질이 아닌 정신성을 담는 재료가 되고 있다. 전시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 행사로 내년 1월31일까지 열린다.

파리=글·사진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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