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는 그네가 갈잔 치낙이라는 몽골 출신 독일 유학생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난 뒤 큰 감흥을 얻었는데 마침 몽골에서 그가 관광객들을 소규모로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곳에 가게 됐다. 작은 말 잔등 위에서 체험한 행복과 위험, 아무도 없는 검은 호수의 고독과 충일, 밤이 되면 불이 꺼지는 독서에서 해방된 자연. 그곳에서 배수아는 스스로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이 되었다.
위 문장들에서 보듯 배수아의 이 기행 산문은 단순히 알타이의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와는 다른 층위의 질감이다. 원시적 공간의 순일한 체험이 문장들에 오롯이 스며든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묻고 답했다.
“나는 누구였던가. 눈앞으로 닥친 귀향을 생각하니 갑자기 그런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 나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나 자신이 되기를 그토록 강요하는 불안과 혼돈이 없으며, 그래서 늙은 뿔처럼 단단히 뭉쳐 있던 나의 자아는 무엇인가의 영향 아래서 서서히 부드러워졌고, 점점 밀도가 희박해지고 가벼워져서 검은 호수 아래로, 향나무의 연기를 따라, 밤 늑대의 울음 속으로, 달은 둥근 얼굴 속으로 휘발되어버렸고, 그럼으로써 도리어 나는 검은 호수와 향나무의 연기, 늑대의 울음, 달의 얼굴로 모두 존재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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