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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알타이 언덕에서 나는 유목민 여인이 되었다

입력 : 2015-10-02 02:03:19 수정 : 2015-10-02 0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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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행집 펴낸 작가 배수아 “나는 아직도 여전히, 여행자들이 모두 떠나버린 알타이 언덕 뒤편에 홀로 남아 있는 마리아의 말머리장식호궁이다. 악보도 음표도 없는 선율이다. 문자 없이 저물어가는 그리움의 언어이다. 모든 일행들이 취하고 있는 저녁, 텅 빈 유르테 안에 홀로 앉아 외부의 푸른 허공을 선회하는 한 마리 독수리를 지켜보는 나, 독수리가 지켜보는 나이다.”

몽골 북서부 산악지대에 알타이가 있다. 그곳을 소설가 배수아(50·위 사진)가 다녀왔다. 그 기록을 산문집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난다)에 담아 최근 펴냈다. 단순한 산문을 넘어 원시적인 고요와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황홀이 깃든 책이다.

배수아는 그네가 갈잔 치낙이라는 몽골 출신 독일 유학생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난 뒤 큰 감흥을 얻었는데 마침 몽골에서 그가 관광객들을 소규모로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곳에 가게 됐다. 작은 말 잔등 위에서 체험한 행복과 위험, 아무도 없는 검은 호수의 고독과 충일, 밤이 되면 불이 꺼지는 독서에서 해방된 자연. 그곳에서 배수아는 스스로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이 되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날 이후 나에게 알타이의 땅은 수없이 많은 세월을 살아낸 늙은 암석과 허무한 시간의 자갈들, 그리고 차가운 흰빛의 커다란 뼈들로 이루어진 장소가 되었다. 바람이 무섭게 휘몰아쳤으므로 식탁 위에 깔아놓은 비닐 식탁보가 펄럭거리고 머리칼이 얼굴을 가렸으며 옷을 껴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춥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사방은 싸늘하고 냉랭했다.”

위 문장들에서 보듯 배수아의 이 기행 산문은 단순히 알타이의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와는 다른 층위의 질감이다. 원시적 공간의 순일한 체험이 문장들에 오롯이 스며든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묻고 답했다.

“나는 누구였던가. 눈앞으로 닥친 귀향을 생각하니 갑자기 그런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 나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나 자신이 되기를 그토록 강요하는 불안과 혼돈이 없으며, 그래서 늙은 뿔처럼 단단히 뭉쳐 있던 나의 자아는 무엇인가의 영향 아래서 서서히 부드러워졌고, 점점 밀도가 희박해지고 가벼워져서 검은 호수 아래로, 향나무의 연기를 따라, 밤 늑대의 울음 속으로, 달은 둥근 얼굴 속으로 휘발되어버렸고, 그럼으로써 도리어 나는 검은 호수와 향나무의 연기, 늑대의 울음, 달의 얼굴로 모두 존재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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