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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의법률산책] 물건에도 주종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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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9-01 22:03:14 수정 : 2015-09-01 17: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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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물건을 여러 관점에서 분류하고, 법적으로 다르게 취급한다. 민법상 주물(主物)과 종물(從物)도 그중 하나다. 쉽게 말하자면 주물은 주된 물건이고, 종물은 주물에 종속되는 물건이다. 그런데 민법 조문을 들여다보면 주물과 종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종물은 ‘물건의 소유자가 그 물건의 상용(常用)에 공(供)하기 위해 자기 소유인 다른 물건을 이에 부속’시킨 물건이다. 이에 종물이 되려면, 그 소유자가 주물의 소유자와 같아야 할 뿐만 아니라, 주물 자체의 일상적인 사용을 돕고, 부속이라고 할 만큼 장소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어야 한다. 나룻배와 노, 시계와 시곗줄이 좋은 예다. 판례에 따르면 백화점 건물 지하 기계실에 설치된 전화교환설비는 백화점 건물의 종물이고, 주유소의 주유기는 주유소 건물의 종물이다. 주물과 종물은 동산에 한하지 않으므로, 부동산도 종물이 될 수 있다. 공장 건물 옆에서 자재창고로 쓰는 건물이 그렇다. 그러나 호텔 객실에 설치된 텔레비전, 전화기, 드라이 크리닝기 등은 호텔 주인이나 이용객의 효용에 이바지할 수 있지만, 호텔 자체의 효용과 직접 관계 있는 것이 아니므로 호텔 건물의 종물이 아니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문제는 종물과 관련해 법이 부여한 효과다. 민법은 ‘종물은 주물의 처분에 따른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처분에 따른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다. 주물을 매도나 증여 등을 통해 처분해 그 소유권이 이전되면, 종물은 따로 인도나 등기를 하지 않더라도 소유권이 이전된다는 뜻인가? 동산은 현실적으로 인도하지 않더라도 인도된 것으로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아 크게 논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처분에 등기가 필요한 부동산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공장 건물의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그 등기를 넘겨주었으나, 그 옆의 자재창고 건물의 등기는 넘겨주지 않았다고 하자. 이 경우 매수인이 공장건물의 처분에 따라 창고건물의 소유권도 취득한다고 보면, 부동산 거래의 근본 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법은 거래를 통해 부동산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이전등기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처분에 따른다’는 말이 주물을 처분한 경우 당사자가 따로 약정하지 않았더라도 종물에 대한 소유권도 이전해 주기로 합의한 취지라고 해석하면 어떨까. 만약 공장건물을 소유자가 매도한 후 창고건물에 대해서는 따로 제3자에게 이전등기를 해주었다면, 제3자가 창고건물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에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있다. 민법은 주물의 소유자가 자신의 물건을 부속시켜야 종물이 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뜻이라면, 주물의 소유자가 굳이 종물의 소유권까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타인의 물건에 대한 매매도 유효하며, 매도인은 그 소유권을 취득해 이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우리 민법의 확고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종물 규정은 부동산을 처분하는 경우 당사자 사이에서는 등기 없이도 양수인이 소유권을 취득하는 일본 민법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부동산 처분의 당사자 사이에서도 등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종물 규정은 개정을 통해 그 뜻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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