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영국 남부 서머싯 글래스톤베리의 농장에서 시작된 음악축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지금은 세계 최대 노천 음악축제로 성장해 매년 전 세계 수백명의 뮤지션과 18만명의 관객이 찾는다. 한국에서 3개팀이 초청받은 지난해부터 아시아 뮤지션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올해도 한국에서 3개팀이 참가했다. 이 축제에 유일하게 두 번 연속 참가한 우리나라 뮤지션이 최고은(32)이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경복궁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달 24∼28일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다녀온 뒤 10∼11일 국립극장 여우락페스티벌 공연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를 때였다. 심플한 옷차림에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카페로 들어서는 순간의 느낌은 압도적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키, 큰 눈, 웃는 입매도 시원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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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션 최초로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별에 2회 연속 참가한 최고은은 “노래와 삶이 일치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원 기자 |
정규 1집 타이틀곡 ‘몬스터’로 시작해 한국적 느낌이 나는 ‘뱃노래’와 ‘아리랑’까지 10여곡을 1시간가량 노래했다. 1년 만에 새로운 곡을 많이 발표한 것도 아니어서 2년 연속 비슷한 무대가 될까 고민이 컸다. 하지만 지난해 말 발표한 첫 정규앨범에 실린 곡을 추가하고 기존 곡은 핸드팬 연주가 진성은과 함께 편곡해 색다른 분위기를 냈다.

수없이 많은 곡과 아티스트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지만 최고은의 노래는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들다. 그만큼 독특한 창법과 음색을 지녔다. 그가 어렸을 때 10년간 판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제서야 무릎을 치게 된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판소리를 배웠어요. 국악과 입시에 실패한 뒤에는 일반 대학에 진학해서 하드코어락 밴드 활동을 했고요. 처음 노래를 할 때는 어떻게 불러도 판소리 느낌이 났어요. 그게 싫어서 판소리 색을 없애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제 나름의 특성으로 어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그의 판소리 스승은 지난해 인간문화재가 된 황승옥 명창이다. 요즘 다시 판소리가 좋아졌다는 최고은은 가끔 광주광역시에 내려가 스승에게 민요를 배우고 있다.
최고은의 음악에서는 또 다른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영어로 쓴 곡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어가 서툰 해외파인가 했더니 어렸을 때부터 광주에서 판소리를 배우며 자란 순수 국내파다. 처음부터 해외진출을 노렸나 했더니 그렇지도 않단다.

판소리 창법이 섞인 영어가사 노래. 그게 그의 노래가 한국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신비롭게 들리는 가장 큰 이유일지 모른다.
최고은은 2012년 KT&G 상상마당 웬즈데이프로젝트에 첫 뮤지션으로 선정돼 장기공연을 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7주간 다양한 무대를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했던 당시의 경험이 지금까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동기와 자신감을 줬다”고 그는 말한다. 이후 음악을 위해 꾸준히 지식을 쌓고 자신을 닦아나가는 최고은은 바른생활 뮤지션이다.

“남의 생각이 아닌, 제 생각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담고 있어요. 그런데 거짓말로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제 노래와 삶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그건 견딜 수 없을 것 같거든요.”
가행일치(歌行一致)하려 노력한다는 뮤지션. 그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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