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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수집가

입력 : 2015-07-01 10:00:00 수정 : 2015-07-01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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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이 빚은 독창적 건축물의 보고 ‘비트라 캠퍼스’
# 일제강점기에 우리 미술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예전에 서울 동대문(흥인지문) 밖 서울운동장이 있었던 곳, 더 예전에는 이간수문이 있었던 곳에 유적들을 밀쳐내고 거창하게 들어앉아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 갔다. 그곳에 일부러 찾아간 이유는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 전시는 번쩍거리는 알루미늄 외피로 둘러싸인 초현대적 혹은 미래적인 모양새와는 사뭇 이질적인 내용이었다. 사실 애초에 그 건물은 의류도매상들과 그로 인해 생긴 여러 가지 작은 규모의 패션 관련 회사들이 모여 있는 동대문 인근을 패션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어 지어진 것이라 들었는데, 막상 엄청난 규모로 지어놓고 나니 그 안에 내용을 채워나가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고 한다. 무조건 짓고 보는 우리 식의 개발은 꼭 그렇게 된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DDP의 이미지와는 약간 괴리감이 있는 간송미술관이 비어 있는 한 부분을 채워주게 된다. 마침 소장하고 있는 많은 문화재급 그림과 도자기 등의 미술품을 정기적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전시하는 간송 측도 역시 현재 성북동에 있는 미술관이 좁았던지라 DDP 측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DDP는 훌륭한 내용이 생겨서 좋고, 간송미술관은 넓은 장소에서 쉽게 전시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일반 시민들은 귀한 예술품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좋은 ‘일거다득’의 상황이 됐다.

대(大)수장가 간송 전형필이 남긴 우리 문화유산이 전시되고 있는 간송미술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내가 본 전시는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군자 그림을 모아서 일반에게 내보이는 것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귀가 즐겁고 상상만으로도 황홀한 작가들, 김홍도, 김정희, 심사정, 이하응, 민영익 등의 시대를 망라한 최고의 그림들이었다.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의 부호이며 고미술품 수집가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의 호를 따서 지은 미술관이다. 간송이 세운 사설 박물관인 보화각을 사후에 그를 기리며 이름을 바꾸고 기능을 확장해 지은 대단히 소중한 장소이다. 전형필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미술을 지켜낸 사람이다. 그는 종로 일대의 상권을 장악했던 집안의 자손으로, 엄청난 규모의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재산을 ‘요즘 부자들’처럼 끊임없는 부의 확장에 쓰지 않고 우리의 문화를 지키는 데 썼다. 또한 그것이 요즘 부자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그림 투기의 목적도 아니었다. 오로지 외국으로 새나가는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키겠다는 일념이었다.

전형필은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 고희동을 알게 되고, 고희동과의 인연으로 금석학의 대가이며 독립선언 33인 중에 하나였던 선각자 오세창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우리 문화에 대해 깨우치게 되고 우리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다.

그는 마치 무너지는 댐을 혼자 힘으로 막았다는 이야기 속의 어떤 소년처럼 고군분투하며 문화재를 모으고 또 모은다. 그런데 그 수고로움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한다. 거액을 들여 사기도 하고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감동시켜 받아내기도 하며 모은 문화재가 이루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우리의 귀한 미술품들이 이 땅에 이만큼 남아 있을 수 없다고 모두 이야기한다. 그가 물려받은 재산을 우리 미술을 온전히 지키는 데 썼고, 그가 남긴 유산으로 전 국민이 모두 우리 미술을 누리게 된 것이다.

#“알게 되면 아끼게 되고, 아끼면 참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김광국의 ‘석농화원’

전시장 안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전시돼 있었다. 민영익이 그린 개성 있고 멋있는 난초도 보았고 추사의 자신감 넘치는 난도 보았으며, 명불허전 단원 김홍도의 백매(白梅)도 눈물 흘리며 보았다. 그 외에도 조희룡, 신위, 최북, 김수철 등등 도저히 한자리에서 다 만나기 힘든 명작들을 시간을 아쉬워하며 눈에 아로새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심사정과 강세황이 합작으로 만든 사군자 화첩이었다. 펼쳐놓은 화첩의 양쪽에 같은 화제로 두 대가의 그림이 모아져 있었는데 그 연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김광국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바로 검색을 해봤더니 화첩의 의뢰인 석농 김광국(石農 金光國, 1727∼1797)은 숙종 때 사람으로, 그의 신분은 중인이고 직업은 의관이었다. 그리고 그는 조선시대의 아주 대단한 수집가였다고 한다.

“알게 되면 참으로 아끼게 되고, 아끼면 참으로 볼 수 있게 되며, 보이게 되면 이를 소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과는 다르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 而非徒畜也).”

이 말은 1795년 김광국이 가지고 있는 글과 그림을 모아 만든 화첩인 ‘석농화원’(石農畵苑)을 만들 때 유한준이라는 사람이 붙인 발문의 한 구절이다. 이 글이 바로 유홍준 교수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의 원전이라고 한다.

들은 바로는 그가 그 글을 잘못 기억하고 인용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잘못된 기억이 원문보다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걸 청출어람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유한준의 평을 더 들어보자.

“김광국의 자는 원빈(元賓)이며, 그림을 알아보는 데 현묘했다. 김광국은 형태로가 아니라 정신으로 그림을 보았다. 천하의 좋아할 만한 물건을 통틀어 김광국이 아낄 것이 없었다. 그림을 아끼는 것을 돌아보고 더욱 깊어져서, 쌓인 것이 저와 같이 성하였다. 내가 그가 폭을 펼쳐 논평하는 것을 보면, 그 논의는 고아함과 속됨, 높고 낮음, 기이함과 바름, 삶과 죽음을 흑백과 같이 나누니 깊이 그림을 아는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부다 진실로 단지 소장하는 그림이 아니다.”

그는 그림을 아끼고 마음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집안 대대로 의관이었던 그는 연행사신을 따라 중국을 왕래하며 약재를 거래하여 큰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양반이나 왕족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대단한 ‘김광국 컬렉션’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수집목록이 대단한 것은 당시 조선의 그림이나 중국 그림 일변도의 그림 수집 풍조와 달리, 아주 이색적으로 일본의 인물화, 네덜란드의 풍경화 등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기법의 그림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림을 소장하고 보관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그 소장품을 화첩으로 만든 사람은 별로 없다. 김광국 이전에 김광수라는 양반 수집가가 있었는데 전해지는 것은 없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석농화원이다.

그 화첩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린 간송문화전에서 보았다. 우리나라의 미술품 수집가의 계보는 조선 전기의 안평대군을 들 수 있고, 그에 못지않은 이가 조선 후기의 김광국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았던 그림이나 도자기 등은 전설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반면 전형필의 수집목록은 한 집안의 보물이 아니라 전 국민의 보물이며, 우리가 그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이다.

# 전 세계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이 ‘수집’된 비트라 캠퍼스

건축은 그림이나 도자기, 조각 같은 예술품들에 비해 ‘수집’이라는 말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일단 땅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설계하고 짓기 위한 막대한 자본이 소요된다. 그런데 전 세계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은, 말하자면 건축 수집가가 있다. 비트라(Vitra)라는 가구회사를 이끌고 있는 롤프 펠바움(Rolf Fehlbaum)이라는 사람이다.

비트라는 주택과 사무용 가구를 생산하는 스위스 회사로, 1934년 빌리 펠바움(Willi Fehlbaum)에 의해 설립되었다. 찰스와 레이 임스(Charles and Ray Eames), 알바르 알토(Alvar Aalto), 장 프루베(Jean Prouve) 등 최고의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디자인 가구를 생산했다.

비트라 캠퍼스 전경. 니콜라스 그림쇼, 프랭크 게리, 안도 다다오, 자하 하디드, 알바로 시자 등에게 맡겨 디자이너의 창조성을 중시하는 기업의 이념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비트라 캠퍼스’가 있는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은 독일령이지만 스위스 바젤에서 30분 거리에 있고, 프랑스에서도 가까운 절묘한 위치에 있다. 1981년 일어난 화재로 1950년대에 지어진 공장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자, 펠바움은 회사 관련 건축물들을 니컬러스 그림쇼(Nicolas Grimshaw),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 안도 다다오(Ando Tadao), 자하 하디드(Zaha Hadid), 알바루 시자(Alvaro Siza) 등에게 맡겨 디자이너의 창조성을 중시하는 기업의 이념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건축가이자 평론가인 필립 존슨은 비트라 캠퍼스를 “1927년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 등이 참여했던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젠호프지들룽(Weissenhofsiedlung) 주거단지 이래로 가장 저명한 건축가 그룹이 한자리에 모인 곳”이라고 일컬었다. 주변 주거지역과 세 나라와 삼각형을 이루는 국경지역의 자연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비트라 소방서는 비틀린 벽과 날렵한 선으로 놀라운 비주얼을 선사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방서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아무래도 자하 하디드가 실현한 최초의 건축으로 유명한 소방서(1993) 건물일 것이다. 1981년의 화재 이후, 비트라는 캠퍼스 내부에 소방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당시 페이퍼 아키텍트(드로잉과 아이디어는 좋으나 실현한 건물이 없는 건축가)로 알려졌던 자하 하디드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비틀린 벽과 날렵한 선으로 놀라운 비주얼을 선사하며 비트라 소방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방서가 되었고, 자하 하디드는 세계에서 가장 일이 많은 건축가가 되었다. 몇 년 후 화재 대비는 공공서비스에 맡기고, 소방서는 디자인 박물관 관련 시설로 전환되었다.

비트라 뮤지엄은 프랑크 게리가 미국 외의 장소에 최초로 설계한 건물이다.
펠바움은 계속해서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다. 스페인 빌바오 뮤지엄 등으로 유명한 미국 건축가 프랑크 게리의 비트라 뮤지엄(1989)은 게리가 미국 외의 장소에 최초로 설계한 건물이었고, 안도 다다오가 일본 밖에서 처음 지은 건물도 바로 이곳의 컨퍼런스 파빌리온(1993)이다. 그의 건물은 지하에 큰 공간을 숨기고 지상에는 일본식 정원의 명상을 위한 산책로와 같은 절제된 콘크리트 벽과 보도가 이어지며, 커다란 세 그루의 벚나무가 심겨졌다.

일본 건축가 SANAA(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의 공장 건물의 커다란 원형의 평면은 지상에서는 순환하는 긴 벽으로 인식된다.
일본 건축가 SANAA(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공장 건물(2012)의 커다란 원형의 평면은 지상에서는 순환하는 긴 벽으로 인식되며, 그들의 평소 작업과 마찬가지로 단순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만드는 매력을 가진 건물이다. 포르투갈 건축가인 알바로 시자 역시 벽돌로 된 공장 건물(1994)을 설계했다. 기존에 있었다가 화재로 불탄 공장 건물을 참조한 것으로, 이웃한 건물을 연결하는 다리의 곡선 지붕이 인상적이다.

비트라 하우스. 전면 유리창을 가진 긴 건물 12개를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매스는 주택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된 건물은 플래그십 스토어인 비트라하우스(VitraHaus, 2010)로 스위스 건축가이자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헤르조그 드 뫼롱(Herzog and de Meuron)의 작업이다. 전면유리창을 가진 긴 건물 12개를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매스는 주택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1953년에 제작된 풀러의 돔(2000), 렌조 피아노의 소형 이동식 주택(Diogene, 2013) 등 건축사에서 의미 있는 작업들이 수집돼 있다.

수집가는 자신을 위해서 수집을 하지만, 진정한 수집가는 역사를 모으고 여기저기 쪼개져서 널려 있는 역사의 퍼즐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완성된 퍼즐을 세상에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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