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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도둑을 잡으려고 경찰이 출동했다면? “설마 그럴 리가!” 다들 고개를 젓겠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다. 그런 일이 실제 서울에서 일어났다.

목동에 사는 일흔 셋의 할아버지는 며칠 전에 자기 집 천장을 더듬다가 비명을 질렀다. 은행 빚을 갚으려고 자신의 ‘비밀 금고’를 찾았으나 금고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천장에 구멍을 뚫어 검정색 비닐봉지에다 5만원권 100장을 보관했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마침내 범인의 꼬리를 잡았다. 천하에 몹쓸 놈은 할아버지 집에 살고 있는 쥐였다. 그 녀석이 비닐봉지를 물고 천장 구석으로 끌고 간 것이었다. 천장 바닥에는 이빨자국이 선명한 비닐조각과 쥐똥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만 하면 물증도 충분하다. 과학수사의 개가였다.

쥐는 종종 인간세상에서 도둑이나 간신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중국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은 환공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엇을 가장 걱정해야 하느냐”고 묻자 “사당의 쥐”라고 답한다. “사당을 훌륭하게 세우고 나면 쥐가 몰래 구멍을 뚫고 들어가 살게 됩니다. 불로 쥐를 잡자니 사당이 탈 것이고, 물을 끌어들이자니 색칠이 벗겨질까 걱정이지요. 결국 사당의 쥐는 잡을 수 없게 됩니다.” 백성의 고혈로 배를 채우는 무리들은 처음부터 발을 못 들이게 하는 게 상책이라는 당부였다.

관중의 고언은 훗날 투서기기(投鼠忌器)의 고사성어로 발전한다. 한나라의 천재학자 가의는 황제에게 ‘쥐를 때려잡고 싶지만 그릇을 깰까 걱정’이라는 경구를 들먹인다. “쥐 한 마리가 쌀을 훔쳐 먹다가 주인에게 발각되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주인은 쥐를 때려잡고 싶지만 항아리를 깨뜨릴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사직을 좀먹는 권신들은 일단 요직을 차지하고 나면 그 후엔 달리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실 쥐에게는 큰 잘못이 없다. 대개는 사람의 잘못을 몽땅 뒤집어쓰는 일이 허다하다. 서울의 쥐도 결국 도둑의 누명을 벗었다. 돈을 먹는 쥐는 세상에 없으니까. 언제나 ‘쥐도 새도 모르게’ 나라 곳간을 축내는 ‘인간 쥐’가 말썽이다. 그냥 두자니 나라 곳간이 겁나고, 때려잡자니 항아리가 걱정이다. 2000년 전 중국의 고민이 오늘 대한민국에서 환생한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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