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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 드러낸 성완종 사건, 정면으로 부딪쳐야 뻔한 결말 막을 수 있어
특검 간다고 달라질까… 박 대통령 결심이 중요
정치와 함께 부침해온 한 기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오늘로 보름째다. 그 사이 봄꽃들은 한달음에 피었다 와락 졌다. 세상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어느덧 빛의 색이 바뀌었다. 그래도 아직 봄이다. 봄빛은 희망이니 자고로 전쟁도 이 계절만은 피했다. 생명의 시기이지 파멸의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만 다르다. 이곳은 유별나다. 언제나 과거와의 전쟁이 뜨겁지만 이번 봄은 잔인하다. 기업인의 죽음으로 폭로한 부정부패, 여야 간 아전인수적 대립, 권력자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이 뒤엉켜 있다.

정치권은 이번 기회에 세상을 바꾸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바쁜 해외 출장 중인데도 엊그제 정치개혁을 위한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지시했다. 이 말의 독해는 어렵지 않다. 여야를 막론한 비리의 판도라 상자를 열자는 거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방어망을 쳤다. 특검도입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허물은 덮고 집권권력만 표적을 삼으라고 요구했다. 오십보백보다. 벌써 싹이 노랗다. 

백영철 논설위원
과거 기업인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까지 비리에 연루돼 제 목숨을 끊었지만 한국의 정치판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례에 비춰 보면 이번 사건도 소란과 달리 겨우 쥐 한두 마리 잡는 결말로 끝날 것임을 대부분이 예감하고 있다. 특검으로 가봤자 뻔한 스토리다. 과거 수많은 특검이 시답잖게 귀결됐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안다.

성완종 사건은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 오늘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의 위기’라고 규정한다. 거기엔 국무총리의 어처구니없는 처신도 포함돼 있다. 박 대통령은 “고뇌가 느껴진다”고 했지만 낙마한 이완구 총리의 언행은 누가 봐도 부끄럽다.

조선엔 명재상이 많았다. 이들은 임금 앞에서 수시로 “통촉하옵소서!”라고 외치고 거침없이 사표를 던질 정도로 당당했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은 무려 120번이나 사직을 청했다고 한다. 이 총리가 노수신의 반에 반이라도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총리는 대통령을 “각하”로 불러 사람들을 어이없게 하더니 총리가 돼서도 통촉을 요청하는 대신 시간만 나면 대통령에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외쳤다. 성은 시리즈의 절정은 총리직 사의 표명이다. 그는 한밤중에 자던 국민을 깨우며 총리 자리에서 내려간다고 했다. 대통령이 남미에 가 있어 기상시간을 맞췄다는 것인데 그의 눈에 국민은 장기판의 졸일 뿐이다. 박 대통령이 귀국 후 먼저 할 일은 이완구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총리 후보로 내세우는 일이다. 이완구를 또 다른 이완구로 교체해 국민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면 위기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이번 사건의 중심엔 박 대통령이 서 있어야 한다. 반성을 해도 박 대통령이 해야 하고 사과를 해도 박 대통령이 해야 한다. 집권세력의 도덕성이 송두리째 걸려 있음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이번 사건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억지를 부리다간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하고 임기를 끝낼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의 발전적인 결말을 원한다면 마음을 비우고 초심과 자기희생, 통찰력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자서전을 다시 꺼내 읽으면 어떨까 싶다. 박 대통령은 유세장에서 테러를 당한 뒤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남아 있어 (하늘이) 목숨을 남겨주었다고 생각하니 더 잃을 것도 더 탐낼 것도 없다는 생각이 절로 솟구쳤다”고 했다. 그 결의로 돌아가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보사건으로 여론이 아들의 구속을 요구하자 눈물을 머금고 결행했다. 이번에도 읍참마속 없이 정면돌파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눈앞의 4·29 재보선을 넘어 더 멀리 봐야 한다. 내년 4월 총선과 2017 대선, 그 다음해 퇴임일까지 염두에 둬야 이번 사건은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박근혜정부 성패의 갈림길이다. 소탐대실해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의 27일 귀국에 국민의 온 눈이 쏠려 있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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