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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평양까지… 5000리길 '암행일기'

입력 : 2015-04-03 21:11:25 수정 : 2015-04-03 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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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내겸 지음/오수창 옮김/아카넷/1만8000원
서수일기-200년 전 암행어사가 밟은 5천리 평안도 길/박내겸 지음/오수창 옮김/아카넷/1만8000원


암행어사 하면 보통 박문수를 떠올린다.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들 억울함을 풀어주는 암행어사의 모습은 고전소설 ‘박문수전’에 잘 묘사돼 있다. 하지만 소설 속 박문수가 실제 암행어사였는지에 대해서는 학계 주장이 엇갈린다. 실제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어땠을까. ‘서수일기(西繡日記)’는 평안도 암행어사의 일기다. 지은이는 순조 22년(1822) 관서로 파견된 암행어사 박내겸(朴來謙·1780∼1842)이다.

조선시대에는 평안도 지역을 ‘서(西)’라고 지칭했다. 고려시대엔 평안도의 중심인 평양에 서경(西京)이 설치되기도 했다. 철령의 서쪽이라 해서 관서(關西)라고 불렸다. 조선시대엔 암행어사를 ‘수(繡)’로 표현했다. 겉옷 밑에 비단옷을 감춘 존재라는 뜻이다.

암행어사는 조선에서만 시행되었된 독특한 관직이다. 순조 22년 당시 처음으로 전국 8도에 모두 암행어사를 보냈다. 박내겸도 이 시기에 순행한 인물이었다. 평양을 포함한 청천강 이남 23개 군현을 돌며 민심을 시찰하고 관헌들을 감찰했다. 성실한 학자였던 그는 임무 수행 중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이것이 현재 전해지는 ‘서수일기’로 가장 사실적으로 기록된 일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간원 정언이던 박내겸은 43세가 되던 해인 1822년 3월16일부터 7월28일까지 평안도를 감찰하라는 순조 임금의 명을 받는다.

130일간 4915리(1930km)를 이동했다. 말을 타거나 걸어서 하루 평균 40리(15km)를 이동한 셈이다. 암행어사가 임무 수행 중 순직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니 상당히 강행군이었던 같다. 숙식마저 여의치 않았고, 아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치죄해야하는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암행어사는 육체적으로나 인간적인 면에서 쉽지 않은 직책이었다.

박내겸이 쓴 4월22일 일기의 한 토막이다. “내가 암행어사로 서도에 나온 뒤로부터 멀거나 가까운 간사한 무리들이 ‘암행어사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사칭하거나 ‘암행어사와 친밀한 사이’라고 하면서 아전과 백성들을 협박해 돈과 재물을 빼앗기도 했으니 (이는) 목을 베어도 용납할 수 없는 죄이며 폐단 또한 적지 않았다.”

박내겸 본인이 ‘가짜 암행어사’로 의심받았다는 대목도 나온다. 박내겸이 자신을 가짜 암행어사로 의심하는 이들에게 마패를 꺼내 보였더니 “사람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말문이 막혀 말을 하지 못한 채 서로 쳐다만 보다가 바로 자빠지더니, 판때기 위에 뒹구는 탄알처럼 언덕을 따라 몸을 뒹굴다가 저 아래에 이르러서야 멈췄다”고 한다.

일기에는 암행어사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기록돼 있다. 박내겸은 가능한한 행색을 초라하게 꾸몄다. 눈치 빠른 기녀들은 그의 신분을 알아채고 서둘러 기방을 빠져나가 몸을 숨겼다. 이밖에도 신분을 숨기기 위한 암행어사의 ‘고군분투’를 일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평양 부벽루 연회도. 조선시대 임금은 암행어사들에게 이 같은 대형 연회에 참석해 관리들의 부패 실상을 파악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카넷 제공
암행어사 출두 장면도 생생하게 쓰여 있다. 박내겸은 주로 저물녘에 암행어사 출두를 외쳤다. 5월13일에 쓴 일기 내용을 보면 “역졸들이 다급한 소리로 ‘어사 출두’를 외치니 사람들이 두려워 피하는 것이 마치 바람이 불어 우박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과 같았다”고 돼 있다.

암행어사의 사적인 일기는 희귀하다. 지금까지 몇 종만 전해 내려온다. 한글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은 황해도 암행어사 박만정이 남긴 ‘해서암행일기’(1976)와 ‘서수일기’뿐이다. 서수일기는 19세기 조선의 통치기구가 작동하던 방식과 평안도 지방민들의 살아가는 사정을 살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록으로 평가된다.

역해자인 서울대 국사학과 오수창 교수는 “평안도 지역이 우리와 관계없는 남의 땅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수천년 함께 살아온 지역이라는 점을 젊은이들에게 알려 앞으로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자는 뜻에서 서수일기를 소개했다”고 했다. 오 교수는 일기마다 평설을 곁들여 당시 시대 상황이나 사건을 무리없이 이해하도록 했다. 편집자는 박내겸이 거쳐간 평안도 명승지의 풍광을 담은 회화도 수록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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