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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미풍 지닌 사람들… 벽안의 美선교사가 쓴 일제 강점기 조선의 삶

입력 : 2015-03-14 01:06:13 수정 : 2015-03-14 0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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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주 편저/서빙더피플/1만6000원
도마리아, 조선에 길을 묻다/양국주 편저/서빙더피플/1만6000원


일제강점기 미국 선교사였던 도마리아(Mary Dodson)의 육필일기가 책으로 나왔다. 그는 선교 목적으로 조선에 건너와 평민들과 반평생을 함께 했다. 신간 ‘도마리아, 조선에 길을 묻다’는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1952년 그간 모아둔 일기와 편지들을 묶은 것이다. 원제목은 ‘조선에서의 반평생’(Half a Life Time in Korea). 책 출간 당시 도마리아가 조선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쓴 한 토막이다.

“그동안의 편지들을 정리하여 굳이 책으로 엮어 놓으려 하는 이유는 신사적이고 호의적이고 인정 많은 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풍습과 특징을 미래의 세대들이 알 수 있도록 보존하고자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중략) 조선 사람들은 제 사십년 지기들입니다. 저는 그들을 사랑하며 이 서간집을 읽는 모든 분도 함께 그들을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책은 1912년 9월2일 도마리아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목포로 향하는 배 안에서 쓴 편지로 시작한다. 6·25전쟁 초기 인민군에 쫓겨 1950년 7월22일 한국을 떠나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때까지 도마리아는 37년9개월간 한국에서 살았다. 기독교 전파가 도마리아의 주요 목적이었지만 당시 여학교 건립, 계몽활동 등에 대부분 시간을 쏟았다. 그의 흔적은 지금도 광주광역시 등 곳곳에 남아 있다.

1881년 미국 조지아주 태생인 도마리아는 대학시절 한국 선교사로 임명돼 일제 병탄 직후인 1912년 8월 조선에 왔다. 조랑말을 타고 지리산 준령을 넘어 고창과 장성, 나주와 화순 등을 제집 뜰인 양 살았다. 복음 10년 만에 기반을 마련한 그는 1922년 오늘날 여전도회의 근간이 된 부인조력회를 만들었다. 한국간호협회를 창설한 선교사 엘리자베스 쉐핑(한국명 서서평)이 세운 여학교인 광주이일성경학교와 수피아여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광주 숭일수피아초등학교 교장으로 7년간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1940년에는 일제가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학교를 자진 폐교하며 저항했다. 태평양전쟁 때는 6개월간 연금되기도 했다.

책에는 태평양전쟁과 6·25라는 엄혹한 현실을 살아야 했던 한국인들의 고달픔이 담겨 있다. 광주에는 이들이 설립한 초중고교와 직업학교들이 다수 남아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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