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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K-POP스타'를 보면서 인문학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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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02 21:17:21 수정 : 2015-03-02 21: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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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이 한류 주도 고무적
K팝 리더들의 안목 각계서 배워야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K팝 신인등용문 ‘K-POP스타’ 공개오디션프로가 마지막 최종 10명을 뽑으면서 점점 열기를 더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진정성을 가지고 승부를 건다. 외국 가수 흉내를 내거나 ‘내 노래 잘해’ 하는 식으로 겉멋을 부리다가는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K팝스타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박진영, 양현석, 유희열씨다. 이들은 중견가수이거나 춤꾼, 작곡가 겸 프로듀서 활동을 하면서 최고의 음악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최고 실력파들이다. 그래서 이 오디션은 직업가수가 되는 최고의 등용문이다. 이들 세 사람의 평을 들으면 한국 팝음악이 오늘날처럼 성장한 이유를 알게 된다. 저 정도의 안목과 교양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에 세계시장을 두드리는 구나, 실감하게 된다. 무엇이 한국적이며 세계적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뮤지션, 아티스트들이다. 저마다 독특한 귀와 눈을 가지고 있다. 공통점은 모두 출연자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음악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점이다. 가식이나 흉내 내는 것을 싫어한다.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음악성에 귀를 기울인다.

이들 심사위원들이 심사 도중에 기뻐하고 환호하는 모습은 참가자들이 자기만의 개성과 표현을 달성했을 때이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음악, 독창성이 있는 노래와 작곡, 춤과 연주에 찬사를 보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우리가 언제 이들보다 훌륭한 음악을 했나요? 지금 심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을 하고 있어요.” “저는 수많은 곡을 작곡했지만 이런 훌륭한 곡은 도저히 작곡할 수 없어요.” “다른 가수들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났어요. 마치 기성가수가 자신의 음반취입 곡을 노래하는 것 같았어요.”

이들은 한국 팝을 평하면서 김치나 비빔밥, 된장찌개 등 한국의 음식 혹은 세계 음식에 비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고 보완하도록 유도하면서 야구기술에 비유하는 등 다양한 설명과 재치를 보인다. 자신 있는 평과 함께 어린 꿈나무들과 후배들을 격려하는 후덕함마저 갖추었다.

자유자재한 화성학, 춤동작, 자작곡능력, 뮤지션으로서의 품성 등 이들이 살피는 것은 여러 가지이다. 세계 팝의 동향, 다양한 가수들의 면면 등 지식을 총동원하면서 내려주는 평은 참으로 친절하고 세밀하다. 젊은 참가자들은 우상과도 같은 심사위원들의 극찬에 얼떨떨하면서도 용기를 얻고, 다음 라운드에서 성숙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전공분야가 있으면서도 방계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여서 그들의 전문성이 넓은 토대 위에서 구축된 튼실한 것임을 알게 한다. 말하자면 어느 한 종류의 음악에 전문가라고 해도 대중음악 일반이나 대중예술의 기본상식이나 지식정보에도 빈틈이 없다.

한류를 이끌어가고 있는 중심세력이 과거 방송드라마에서 K팝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K팝 수요는 중국, 일본은 물론 아시아를 넘어서 구미에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국말로 노래하는 것이 과거에는 발음이 부드럽게 넘어가지 못하고 결점이었는데 요즘은 받침발음으로 리듬의 강약과 매듭이 확실하고, 강력한 인상과 함께 드라마틱하게 만든다고까지 말한다.

예부터 한국을 ‘가무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 DNA를 확인할 수 있다. 미술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표현력이나 디자인 면에서 떨어진다고 한다. 오랜 수련과 사고의 깊이를 요하는 미술보다는 감정을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강점을 가진 한국인이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 음악계도 클래식보다는 대중음악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한류를 대중음악이 끌어가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디밴드를 위시한 대중음악 인구를 잘 조련하고 다듬어서, 부가가치를 높여서 세계시장에 수출하여야 한다. 클래식은 이제 한정된 수요층에 머물고 있으며, 음악시장에서 주류를 내놓은 지 오래다.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크로스오버하고 있으며, 대중음악 시장의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 대중음악 평론가는 “세계의 대중음악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한류의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기반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실질적인 시장적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류 뮤지션뿐 아니라 이류, 삼류 뮤지션들의 시장도 과소평가하지 말고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다른 의식주 문화는 물론이고 나중에는 인문학과 고급예술 등의 분야에까지 이르러야 한국 문화의 주체화와 함께 세계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K팝스타를 바라보면서 시종 느끼는 것이 한국의 학계나 예술계가 K팝을 이끌어가는 리더들과 같은 정도의 혜안을 가진 스승이나 선배가 있었던가, 하는 점이다. 훌륭한 선생이 없으니 청출어람의 제자도 없다. 모두 서양의 모방자나 숭배자들이거나 밥 먹는 월급쟁이이거나 식객 정도일 뿐이다.

우리 인문학계는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아 전공분야를 넘어서면 누구보다 무식한 게 학자들이다. 자신들의 무식을 ‘전공이 아니라서’ 라고 넘어간다. 이건 겸손도 아니고 숫제 위선이고 직무유기이다. 이러니 한국의 인문학이 사대-식민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철학자에게 “당신은 자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물으면 “제 전공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한다. 어느 국사학자에게 “선생님은 근대화의 시점을 어떻게 봅니까”라고 물으면 “제 전공이 독립운동사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한다.

학자들은 서구학문의 우상화에 빠져 학문적 종속이나 신민(臣民)이 되어버렸다. ‘K-POP 스타’를 보는 내내 한국의 인문학 수준이 저 정도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자기노래를 하는 인문학, 자기작곡을 하는 인문학이 절실하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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