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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여성 대통령과 ‘아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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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01 22:12:59 수정 : 2015-03-02 00: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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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아바야를 입고 운전대를 잡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을 본 적이 있다. 아바야는 이슬람 국가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과 손발을 빼고 온 몸을 두르다시피 한 검은색 옷이다. 사우디에선 여성이 운전할 수 없다. 법으로 정한 건 아니지만 관습이 그렇다. 마날 알 샤리프는 차를 모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가 수감됐다. 그녀에게 차 키를 빌려준 오빠도 구금됐고, 온 가족이 지역 사회에서 ‘왕따’를 당했다. 그녀의 ‘잔혹한 운전기’를 소개한 TED 동영상은 120만건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덕분에 사우디 여성들의 ‘운전 투쟁’이 심심치 않게 외신을 탄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쿠웨이트, 사우디 등 중동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중동은 우리 국민들이 1970년대 오일쇼크라는 시대적 위기를 오일달러 특수라는 기회로 바꿨던 대표적인 성공신화의 현장입니다.” 지난달 2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40년 전 중동을 찾아 건설붐을 일으켰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청와대 측도 이번 순방을 ‘제2의 중동붐’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다. 최근 유가 하락으로 ‘오일머니’ 가치는 좀 떨어졌지만 중동은 여전히 에너지·건설·플랜트·의료·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등에서 협력할 여지가 큰 지역이다.

여기에 하나 더. 여성과 문화라는 잠재성이 큰 ‘시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우디 사례처럼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중동은 여성 교육·인권 면에서 낙후돼 있다. 여성 취업률은 전체의 10∼20%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지역에도 개방화·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여성들의 대학진학률과 더불어 사회 진출은 증가 추세다. 아바야를 입어야 하고, 운전할 자유조차 없는 사우디에서도 여성 대학진학률은 60%대다. 중동 ‘모던걸’을 겨냥한 소비시장 공략은 필수다. 게다가 이들한테 ‘한류’는 익숙한 문화 현상이다.

평상복 차림의 박 대통령이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고위직 남성들과 악수를 나누고 회담하는 모습이 이 지역 여성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도 비즈니스 정장 차림으로 중동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그래도 이들은 여성의 정치·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방국 출신이다. 유교 문화가 깊은 아시아에서 온 여성 대통령의 중동외교는 남다르게 읽힐 법하다. 여성의 잠재력에 대한 메시지라도 내놓는다면 그 효과는 더 크지 않을까.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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