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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불어터진 국수? 등 터지는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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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27 21:18:47 수정 : 2015-02-27 21: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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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저물가 온기 서민 체감 어렵고
주거비 부담 커져 살림살이 더 팍팍
양극화 해소없이 경제지표 의미없어
지난해 가을 어떤 70대 부자와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저녁을 함께했다. 그는 과거 증권가에서 특유의 별명으로 통하는 ‘큰 손’이었다. 그를 소개한 지인은 “재산이 수천억대”라고 했다. 돈의 힘인지, 정치·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그의 입담은 거침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겐 독설을 날렸고, 박근혜 대통령에겐 연민의 정을 드러냈다. 그런 흐름에서 그는 경제상황에 대해 “물가가 이렇게 낮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경제에 대한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물가가 워낙 싸니 서민들도 살림하기 괜찮을 거”라고 했다.

연민의 투영이겠으나 틀린 말도 아니다. 물가에 대한 그의 평은 물가지표 흐름과 일치하는 것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로 2년간 1%대로 낮게 기는 터다.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서민들도 살림하기 괜찮을 것”이라는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1%대 물가상승률을 두고 “저물가가 이어지고 있다”고 기사를 써본 기자라면 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뭘 안다고 이따위 기사를 쓰냐”, “먹고 살기 팍팍하기만 한데 어느 나라 얘기냐”식의 험구가 꼬리를 문다.

이들의 반응이 엄살이나 과장은 아니다. 서민들이 저물가를 느낄 수 없는 이유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대로 기고 있다지만 세부 내역을 보면 서민들이 ‘물가 포복’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가 발견된다. 우선 주거비, 전기·가스비 등 서민들에게 밀접한 품목들은 훨씬 높은 상승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전기·가스비는 3∼6%의 상승 흐름이고 주거비는 ‘미친 전세’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치솟으며 집 없는 서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1%대 물가상승률을 두고 편의적으로 ‘저물가’라고 표현하지만 이것이 물가의 절대수준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저물가 흐름이 시작되기 전 물가는 이미 크게 뜀박질을 한 터다. 2007년까지 2%대이던 물가 상승률은 이명박정부 들어 4∼5%대로 뛰기 시작했다. 저금리·고환율 정책으로 돈이 풀리고 수입물가가 오른 결과다. 부채에 눌리고 소득은 게걸음인 서민 가계에 물가는 이미 오래전 버거운 수준으로 뛴 것이다.

하나의 물가지표를 두고 벌어진 이해의 간극을 보면 거의 다른 세상 수준이다. 부자는 “요즘 물가 참 싸다”라고 느끼는 반면 서민들은 체감할 수 없는 그 지표에 분노한다. 한 나라 경제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거시경제 지표는 객관적인 것이지만 이처럼 경제주체들의 해석은 주관적이다. 3만달러에 다가서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나 900억달러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를 서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류순열 선임기자
같은 하늘 다른 세상처럼 객관적 지표에 대한 주관적 이해의 간극을 벌리는 건 양극화다. 기업과 가계, 기업과 기업 간 양극화가 깊어질수록 간극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2013년 1인당 GNI가 2869만원이라지만 이 중 가계가 온전히 챙기는 액수는 56%가량인 1609만원에 불과하다. 성장의 과실이 가계로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이를 “가계 빈혈”이라 칭하고 저성장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부동산 3법’을 늦게 처리한 것을 빗대 “불어 터진 국수를 먹는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것을 그냥 먹고도 경제가, 부동산이 힘을 좀 내가지고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활성화하고 있다”면서. 숱한 서민들이 장탄식하며 가슴을 쳤을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으로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그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중이다. ‘원조 친박’, 이혜훈 전 의원조차 전셋값 폭등 이유로 부동산 3법을 지목했다.

양극화 세상에서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거시경제 지표는 국민의 보편적 삶을 말해주지 못한다. 경제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GDP 증가만을 추구하다가 정작 국민들을 더 못사는 사회로 몰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게 2010년이다. 우리는 아직도 “빚 내 집 사라”는, 그 뻔한 부동산 중심 경기부양 레퍼토리다. 집 없는 서민은 등이 터져나가든 말든.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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