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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바꿔야 할 한국사] 식민사학 해체운동…작지만 의미있는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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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12 21:11:00 수정 : 2015-02-12 2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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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대 1의 싸움… 역사학계 비주류의 거세지는 '외풍'
‘99대 1의 싸움’ 최근 비주류 역사학계의 주류 학계·학설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1’의 비주류가 힘의 차이가 분명한 상황에서 논쟁을 벌이려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주류 역사학계는 연구자들 수, 연구 성과와 역량, 인지도, 영향력 등에서 주류에 크게 뒤진다. 그러나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일고 있다. 학계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다. 국회와 정부가 비주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공론의 장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학계 내부에서도 그간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적인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2007년부터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Early Korea Project’를 지원해 발간한 도서들. 재단은 한국사 연구의 최신 성과를 소개했다고 밝혔으나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오른쪽 두 번째)는 식민사학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변화 압박하는 ‘외풍’


가장 주목되는 곳은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다. 중국, 일본의 역사 왜곡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2013년 7월 가동된 특위는 올해도 활동을 이어간다. 특위는 그동안 주류 학계·학설에 비판적인 입장의 학자들을 많이 초청해 공청회를 열고, 증언을 들었다. 이들로부터 주류 학설이 지금껏 식민사학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비주류 역사학자들은 한국 고대사가 지금의 중국 영역, 만주 일대 등을 배경으로 전개됐다며 한국사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유독 강조했다. 특위 위원들 상당수는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1차적으로 중·일 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논리 개발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지만, 많은 특위 위원들이 공감하는 가운데 역사학계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지난해 특위 위원장직을 대행했던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실 관계자는 “주류 학자들은 비주류 주장이 말이 안 된다면서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못했다”며 “비주류 견해를 보다 폭넓게 소개했던 지금까지의 특위의 운영 기조가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위는 주류·비주류 견해를 같이 담은 자료집도 제작하고 있다. 특위와 인연을 맺었던 학자들이 참여해 이르면 이달 말 출간할 계획이다. 한사군 한반도설(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낙랑 등의 통치기관을 한반도에 설치했다는 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삼국사기 초기기록이 과학적이지 못해 믿을 수 없다는 것으로 임나일본부설과 연결됨) 등 비주류에서 집중 제기했던 사안이 담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특위 활동이 본격화한 뒤 학계 통설과 다른 주장을 담은 연구도 수용되는 분위기가 학계에 조성되는 등 변화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제도적인 지원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연구 지원을 결정할 때 적용되던 학위, 기존 연구성과, 학술기관 소속 여부 등의 기준을 낮춰 비주류 학자들의 연구 기반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른바 ‘재야 사학자’들이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는 분들이 있어 연구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나름의 유물, 유적, 사료를 근거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평하게 지원을 해줘야 한다”며 “이를 통해 주류·비주류 주장이 학계에서 좀 더 활발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국회 움직임에 비판적 시각이 없는 건 아니다. 학계 토론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에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와 국회의 개입이 중국, 일본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대응으로 비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과거에도 정치권 개입이 있었으나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국회 관계자들은 “우리 역할은 토론을 유도하는 데 한정된다. 학설 수정은 학계에서 토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단시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조직화 가능성 보여주는 비주류

식민사학해체운동본부가 목소리를 키우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비주류 주장이 조직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역사단체와 독립운동가 관련 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운동본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영문의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를 발간한 뒤인 지난해 3월 결성됐다. 운동본부는 한사군 한반도설 등을 내용으로 한 책에 대해 “한반도 북부는 중국 식민지가 되고 남부는 일본 식민지가 되는 논리를 담고 있다”며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정립한 식민사학을 국가 기관이 세계 학계와 재외공관에 배포하는 셈”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재단은 “그간의 오류를 지적하고 최신 연구성과를 서구 학계에 소개했다”고 밝혔으나 운동본부는 공개토론을 제안하고,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운동본부 대변인인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주한 연구위원은 “외국에서 텍스트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였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해 운동본부를 결성했다”며 “중국,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재단이 이런 논리를 내세우면 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운동본부가 주장한 공개토론과 감사는 제한적으로만 성사됐다. 공개토론이 있기는 했으나 운동본부가 지목한 연구자는 참석하지 않았고, 감사는 정책감사가 아닌 예산감사만 이뤄졌다. 그러나 토론회가 열렸다는 사실 자체는 변화된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운동본부의 감사 청구는 재단이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심사절차를 누락한 채 25만달러를 지원한 사실을 최근 밝혀내는 계기가 됐다. 운동본부는 감사 결과가 알려진 직후 낸 성명서에서 “(정책감사를 하지 않아) 감사원이 재단의 매국, 매사 행위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앞으로도 계속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연구위원은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아 조직의 내실을 다져가는 중이다. 전략적이고, 신중하게 접근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발간한 ‘조선사’의 표지.
◆식민사학의 근간 ‘조선사’ 해체 작업 진행


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선사’ 역주는 주목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 구도 속에서 진행된다기보다는 학계에서 오랫동안 지적됐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38년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조선사는 고대 이래 한국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역사서다. 원사료를 풍부하게 담고 있어 발간 이후 역사 연구에 많이 활용됐다. 문제는 식민사학 형성에 유리한 자료를 선별해 담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사를 기반으로 할 경우 한국사는 왜곡을 피할 수 없는데, 지금도 국내외에서 연구 자료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사 역주는 조선사에서 날조한 사료를 수정하고, 식민사학과 배치되는 내용을 피해간 흔적을 잡아내기 위한 작업이다. 역사 연구의 기본자료가 되는 조선사의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분명히 밝혀 한국사 연구 틀을 바로잡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잘못된 학설을 사안별로 접근해 수정해가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 작업은 지난해 12월 7명의 연구자가 참여해 시작했고, 앞으로 5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인하대 복기대 교수는 “조선사는 외국에도 많이 나가 있어 외국학자들은 이 책을 가지고 한국사를 연구한다”며 “조선사가 잘못된 자료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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