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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아는 자가 ‘神의 일’ 대신할 수 있다

입력 : 2015-02-11 21:00:58 수정 : 2015-02-11 21: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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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흑백영화 '이다'
자기 정체성 찾아가는 소녀의 여정
자유분방한 이모 반다와 동행 통해
진정한 신앙인에 대한 깨달음 얻어
정적·명상적 흑백 영상 강한 설득력
전세계 유수 영화제서 56개 트로피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영화 '이다'는 삶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자가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신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아로 수녀원에서 자란 소녀 안나(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는 수녀가 되기 위한 서원식을 치르기 직전 수녀원장의 부름을 받고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아가타 쿠레샤)의 존재를 전해들은 뒤 그를 찾아 간다. 하지만 이모는 안나가 유대인이며 본명은 ‘이다 레벤슈타인’이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려준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진 이다와 가족사에 얽힌 숨겨진 비밀을 밝히려는 이모 완다의 동행이 시작된다.

폴란드 감독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영화 ‘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녀의 여정과 진정한 신앙에 대한 이야기다.

성향이 확연히 다른 두 여자의 만남은 독일과 러시아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통스러운 역사를 보내야 했던 폴란드의 쓰라린 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수녀원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 소녀 이다는 욕망에 충실해 보이는 완다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가슴 속에 감춰진 깊은 상처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완다를 이해해간다. 

술과 담배, 섹스를 즐기는 자유분방한 완다는 신의 존재를 믿는 이다와는 정반대 세계 속에 사는 인간이다. 그는 스탈린의 공포정치 시대인 1950년대 초 ‘피의 완다’로 불릴 만큼 ‘인민의 적’에게 사형을 선고하던 판사였다. 폴란드 절망의 시대를 온몸으로 지나온 인물로, 자신의 언니를 똑닮아 예술가다운 천성을 가진 조카 이다가 60년대 변화와 작은 번영의 희망을 품은 폴란드에서 자유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준다. 

“해보지도 않고 희생을 맹세하면 무슨 의미가 있니?”

이다에게 던지는 완다의 대사에서처럼 영화는 종종 진정한 신앙에 대해 거론한다. 이다는 홀로 예수상 아래에서 “아직 확신이 안 선다”고 고백한다. 암살되어 매장된 가족의 유골을 발굴하는 장면에서는 ‘과연 신이 있는가’를 묻기도 한다. 

가족사에 얽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완다가 자살을 택한 이후 이다는 이모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 음악을 켠 뒤 담배를 피워보고 술도 마신다. 여정 중에 만난 섹소폰 연주자와 춤을 추고 키스하다 섹스도 나눈다. 이모 완다의 일상을 되짚어보며 일반인의 삶을 체득해 본다. 신의 영역에 갇혀 있다가 인간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바다에 가본 적 있어?”

남자의 물음에 이다는 “아무 데도 가본 적 없어”라고 답한다. 남자는 “남들 하듯이 평범하게 살아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다는 사랑을 접어놓고 다시 수녀복을 챙겨 입은 채 짐을 꾸려 나선다. 깨달음을 얻고 결심한 듯 확신이 선, 이제야 비로소 신을 접할 수 있게 됐다는 표정이다. 

이다를 연기한 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의 유독 까만 눈동자는 ‘인간의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을 아는, 이를 겪어 본 사람만이 진정한 목자나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의 일을 아는 자가 신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생을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 않은 채, 인간의 삶을 찬찬히 살피며 깨달음을 찾기도 전에 ‘신부터 믿으라’거나 ‘신에게 의지하라’고 외치는 섣부른 자들이 반드시 챙겨봐야 할 작품이다.

고전영화 속 배우처럼 단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는 순수한 소녀의 얼굴이지만 참혹한 역사에 노출된 채 그걸 감당해내는 강인한 기운과 침착한 지성의 이다를 완벽하게 그려냈다. 놀랍게도 연기가 처음인 그는 작품 자체를 즐기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한 사람들의 생각을 단번에 뒤집어 놓았다.

정적이면서도 명상적인 흑백 영상은 오히려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좌절된 생과 버려진 꿈, 그럼에도 싹을 내미는 희망 등 60년대 초 폴란드의 배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며 컬러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고정관념을 깬 4대 3 화면 비율의 촬영기법이 눈부시다. 다른 영화들에서 볼 수 없었던 카메라의 앵글과 독특한 구도는 연출의 새로운 시도다. 로드무비들이 넒은 화면을 사용하는 데 반해 좁은 프레임과 정적인 화면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흔히 보아온 촬영각도가 아닌데도 묘한 안정감을 준다. 

영국아카데미영화상과 뉴욕영화비평가협회상 등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56개 트로피를 거머쥐고, 3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예를 안았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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