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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써로게이트’. 본체는 집에 누워 있으면서 위험한 바깥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은 써로게이트라는 기계인간이다. 대리·대행자라는 뜻을 가진 써로게이트는 총이나 칼에 맞아도 괜찮다. 여성에게는 늙어가는 진짜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 매력적인 로봇이다. 하지만 사람끼리 직접 부딪치면서 겪는 희로애락은 별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안전한 삶과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인간 세상에서 따지고 보면 대리 아닌 게 별로 없다. 노동력, 품을 판다는 것도 고용주 대신 일을 해주는 것이고 버스, 지하철, 택시를 타는 것도 운전기사가 요금을 받고 손님을 대신 이동시켜주는 것이다. 이삿짐센터나 주차대행, 대리운전, 택배, 청소·경비용역, 도배, 가사도우미, 정원사, 자가용 운전사, 결혼식 하객·주례대행 등도 모두 누군가를 대신해 일을 해주고 대가를 받는 직업이다. 대학에서는 대리 수강이 끊이질 않는다. 얼핏 고상한 듯 보이나 변호사, 노무사, 회계사도 돈을 받고 대신 다투고 계산해 주는 직업이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 ‘돈 받아줍니다’와 다른 건 소득세를 내느냐 내지 않느냐,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조선시대에는 곡비(哭婢)가 있었다. 다른 사람 대신 울어 주고 품삯을 받는 사람이다. 왕이나 양반의 장례식에서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상주 대신 곡을 했다. 곡비로 왕실의 장례에서는 궁인을 쓰고, 사대부의 경우에는 여종을 시켰다. 여의치 않을 때는 민가의 여인을 고용하기도 했다. 요즘엔 대신 울어주는 기계가 나왔다고 한다. 사찰에선 염불을 못하는 승려를 위해 녹음기를 틀어놓기도 하고, 염불 전문 승려를 고용하기도 한다.

논문 대필, 대리모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종종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걸로 봐서 수요가 꽤 있는 모양이다. 먼 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아내대행, 신랑대행, 부모대행, 자녀대행이란 직업이 국내에도 들어왔다는 소식이다. 예비군·민방위 교육은 물론 회사연수대행, 연인 간의 사과와 이별 통보, 심지어 부모님께 정기적으로 휴대전화로 안부 문자를 드리거나 찾아뵙는 효도대행까지 생겨났다. 군복무, 교도소 수감, 심지어 소변·대변대행 서비스도 나올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려온다. 이러다가 결혼대행, 사망대행까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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