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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재 복원 연구 소홀 안타까워… 국내 최초 17세기 불화 ‘고색복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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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7 21:08:35 수정 : 2015-01-28 00: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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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신겸이 그린 ‘영산회괘불탱’ 5년 만에 복원한 한희정 화가 2월 11일부터 일본 교토시립예술대학에서 독특한 전시회가 열린다. 충북 청원 안심사 영산전에 보존 중인 괘불 ‘영산회괘불탱’(대한민국 국보 제297호) 과 꼭 닮은 그림이 전시된다. 가로 4.61m, 세로 6.31m 규모의 대형이다. 불교회화가 한희정(40·여)씨가 국내 처음 ‘고색복원 기법’으로 복원해냈다. 고색복원 기법이란 괘불이 그려진 1652년 당시의 기법 그대로 세월의 흔적이 남은 현재의 그림을 재현했다는 의미다. 한씨는 2010년부터 홀로 안심사 괘불의 고색복원에 나서 5년 만에 완성을 앞두고 있다. 대학 측은 한씨의 그림만을 전시하기 위해 이 전시회를 기획했다.

27일 세계일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씨는 “불화의 제작과정과 기법을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후대까지 영원히 이어질 수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죠. 괘불 복원에 나선 건 그런 의미 때문이다.”고 말했다.

문화재 전승을 위한 모사에는 현상모사와 복원모사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현상모사는 사진을 찍듯이 변색되거나 떨어져 나간 부분까지 현 상태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고, 복원모사는 당시 제작기법으로 변색 전 깨끗한 그림 상태를 추정해 그려내는 것이다. 한씨는 17세기 중엽의 불화의 제작기법과 특징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두 방법을 적절히 섞은 고색복원모사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학예연구원이었던 한씨가 직접 고색복원에 나서게 된 건 한 일본 복원전문가의 조언 때문이었다. 일본 전문가 야마우치(山內)는 한씨에게 “한국은 문화재를 수리할 때 부수고 새로 짓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새로운 창작품이지 수리가 아니다”며 “한국은 복원수리기술이 부족한 것 같다. 좋은 문화재가 많이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씨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 ‘내가 할 일’이 되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수리 후 상태가 더 나빠졌던 일을 비일비재하게 겪었거든요. 전문가에게 수리를 맡긴 문화재에 볼펜 자국이 있기도 했고, 물감이 떨어져 나가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불교회화작가 한희정씨가 일본 교토시립예술대학 내 자신의 연구실에서 고색복원 중인 ‘안심사 영산회괘불탱’의 채색작업을 하고 있다.
한씨는 무엇에 홀린 듯 모든 일을 접어둔 채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 교토시립예술대학 석사과정부터 밟기 시작했다. 석사과정을 수석졸업하고 당시 제작한 고려불화 복원 작품으로 교토시장상을 받았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17세기 괘불을 복원하기로 했다.

처음엔 화승 신겸 등이 그린 충북 청주 보살사의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58호)을 복원하려 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문화재청, 보살사 등에 열람과 촬영 허락을 구했다. 8개월간 공을 들였지만 보살사 주지스님은 한씨를 만나주지 않았다. 남아 있는 신겸의 괘불 3점 중 하나인 안심사 괘불을 떠올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심사를 찾아가 주지스님에게 자신이 하려는 일의 취지를 설명했고, 흔쾌히 허락을 얻었다. 허락을 얻는 데까지만 1년이 걸렸다.

밑그림 준비에 나섰다. 어떤 소재를 쓰고, 어떤 안료를 썼는지 등의 기초자료를 조사했다. 모시에 그려진 것을 확인, 한 필에 200만원 하는 한삼모시 6필을 구했다. 배접작업도 쉽지 않았다. 배접은 탱화를 그릴 때 밑초가 그려진 종이를 천 위에 포개어 붙이는 일을 말한다. 그는 불화장 권영관(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15호)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전분과 밀가루 풀의 농도를 조절하고, 음양지 1200장을 일일이 손으로 덧대 붙이는 수고로운 작업의 연속이었다. 모든 과정은 기록으로 남겼다. 밑그림 완성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씨는 8000만원이라는 제작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각 기관에 도움을 구하고, 자신의 재산도 모두 들였다. 한국에서는 젊은 연구자의 문화재 복원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의 후지 제록스 등 4곳에서 관심을 갖고 선뜻 제작비를 지원했다. 한씨는 “우리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다른 나라가 더 적극적인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채색작업은 일본에서 진행했다. 한국에서는 기술이 단절돼 광물을 잘게 부수어 만드는 천연 안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료의 입자에 따라 아교를 섞어 얇게 3∼5번씩 덧칠했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1년간 채색에 몰두했다. 한씨는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일본 기업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아마 결실을 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한씨는 후배 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혼자 알고 끝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전통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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