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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칼럼] 제2외국어 선택, 균형 잡는 정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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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5 22:24:30 수정 : 2015-01-25 22: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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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따기 쉬운 베트남·아랍어 ‘편중’
다양한 외국어 교육 대책 마련을
2014학년도에 이어 2015학년도에도 수능시험 출제 오류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제2외국어 선택 편중 현상이다. 2015학년도 수능에서 제2외국어/한문 영역 가운데 베트남어, 아랍어 선택 비율이 무려 42%, 20%로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유럽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어, 중국어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베트남어 선택자는 전년도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아랍어를 쓰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베트남도 우리나라 수출액 순위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교역상대국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베트남어, 아랍어의 수능 선택 비율은 비정상이다.

베트남어와 아랍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가 전국에 각각 한 곳밖에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처럼 수능 선택 비율이 높은 이유는 다른 외국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등급을 얻기 쉽기 때문이다. 다른 외국어는 외고 출신과 경쟁해야 하므로 높은 등급을 받기 쉽지 않으나, 베트남어와 아랍어는 소위 ‘찍고 요행을 바랄 수 있는’ 과목으로 통한다. 이렇게 해 좋은 등급을 얻은들 그 외국어를 대학입시 말고 어디다 쓸 수 있을 것인가. 또 대학입시에서부터 요행수를 배운 학생에게 앞으로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베트남어와 아랍어가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유럽어나 일본어, 중국어보다 덜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교육당국이 학생들로 하여금 제2외국어를 그 중요도에 따라 균형 있게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비정상 상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수능 출제 오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폐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도를 가림에 있어서는 교역량, 취업기회 등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학문과 문화의 수용과 전달 등 문화적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2외국어 가운데 독일어, 프랑스어 선택 비율이 채 3%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독일과 프랑스가 경제력에 있어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4위, 5위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정치적·문화적 비중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국제정치적으로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 경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국가에 대해, 독일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특히 문화적·학문적으로도 중요한 언어다. 미술·음악·등 문화예술 분야, 문학·역사학·철학(文史哲) 등 인문학 분야와 법학 등 사회과학 분야 연구를 위해 유용한 학문어이다. 더구나 최근 우리 사회는 양극화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체질을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독일을 배우자는 열풍이 일었다. 한 나라 체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언어를 알아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학교 현장에서도 프랑스어와 독일어 위주로 제2외국어 교육 황폐화가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 선택 비중이 갈수록 줄어, 담당 교사들은 여러 학교를 전전하거나 아예 다른 과목을 재교육 받아 가르치고 있다 한다. 대학교육에서도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퇴출되다시피 했다. 소위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전환한 뒤 교양과정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학원 입학시험, 학위논문 제출 자격시험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전공 학과조차 폐지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필요한 학문 분야의 후속세대 양성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프랑스어와 독일어의 외면으로 유럽어 중 영어 편중이 심화돼 구미문화 수용을 왜곡할 우려마저 있다. 한류를 바탕으로 문화대국을 꿈꾼다면, 여러 선진 문화를 균형 있게 수용하고 이들 나라에 우리 문화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 교육당국은 2001학년도에 제2외국어를 수능 선택과목으로 도입하면서 “글로벌 시대의 도래에 따른 외국어 교육의 다양화”를 내걸었다. 제2외국어 편중 현상이 “다문화와 교류 증진 때문”라고 변명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위해 제2외국어 선택에 균형을 잡아주는 정책을 시급히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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