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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되살아난 사직대제에서 찾은 값진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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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13 21:33:07 수정 : 2015-01-13 21: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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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은 기록을 소홀히 하는 민족으로, 역사를 모르고 민족의 정기를 무시하며 사는 미개함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세대는 오랫동안 이런 자기 비하 발언을 들어오며 교육받고 자랐다. 하지만 나는 우리 문화 속에 겹겹이 쌓여 있는 귀한 기록과 그 기록의 재현을 보면서 우리 선조의 치밀함과 창의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정조 시대의 의궤를 바탕으로 한 혜경궁 홍씨의 회례연 재현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살아 있는 기록 정신이 우리 세대에 이어져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감탄하며 그동안 움츠렸던 자긍심과 자존감을 되찾아 개인과 민족이 되살아남을 느꼈던 기억이 내겐 아직도 생생하다.

해는 바뀌었지만 쉽게 잊어선 안 될 일이 하나 있다. 최근 국립국악원은 문화적으로 르네상스기로 평가되던 18세기 정조대에 시행됐던 사직대제(社稷大祭)를 성실히 재현해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의 국가적 제례행사 속에 담긴 선조의 면밀하고 단아하며, 격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절제와 격조로 일관하는 정신과 정성을 되살려냈다.

사직(社稷)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가리킨다. 이 두 신의 신위와 제사 지내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 사직단(社稷壇)이고 이 두 신에게 국가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올리는 제사가 사직제(社稷祭)다.

농본국인 우리나라 사직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고구려(392년) 때 국사(國社)로 세워졌고, 신라 선덕왕 4년(783년) 처음으로 사직단을 세웠다.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조선조 태조 3년(1394년) 사직단이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세워져 오늘의 사직단 자리에서 사직제가 열리다 1908년 일제의 침략에 중단됐다. 사직제는 1988년에 비로소 다시 치러지지만 그 내용은 미미하고 엉성한 상태였다. 특히 제례악이 제대로 복원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국립국악원은 문헌고증을 면밀히 검토한 토대 위에 사직대제 재현을 훌륭하게 치러냈다. 특히 정조의 명에 의해 제작된 사직제 관련 의궤(儀軌)인 ‘사직서의궤’와 ‘춘관통고’를 상세하게 검토, 고증하여 사직제례악이 지닌 장엄미와 정제미를 충실히 선보였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비하와 모멸감에 갇혀 살아온 지난 세월 속에서 우리 조상이 이뤄 놓은 값진 전통의 깊숙한 속살을 살펴볼 겨를 없이 ‘잘 살아보자’는 목표에만 매진했다.

이제 다함께 숨을 고르며, 우리 문화 속에 흐르는 격조 있는 삶의 태도와 절제를 잃지 않고 역사 속 세파를 살아오면서 세워놓은 조상의 정신과 고매함을 다시 몸과 정신 속에 일으켜 세울 때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사직대제 재현에 대한 지속적 관심은 전통 속 균형과 절제를 지향하는 여유와 인격을 되찾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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