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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화된 생리휴가의 ‘불편한 진실’

입력 : 2015-01-09 19:02:38 수정 : 2015-01-09 23: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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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상사 눈치 보여 엄두도 못내… 男 “왜 금요일에만 생리” 비아냥
“쓰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왜 욕을 먹는 건지 모르겠어요.”

직장인 허모(27·여)씨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보고 황당함을 느꼈다. 한 남성이 올린 글에는 ‘여성들이 생리휴가를 꼭 금요일이나 징검다리 연휴 중간에 쓴다’고 적혀 있었다. 댓글에는 ‘여자들은 왜 금요일에만 생리를 할까’라는 등 비아냥거리는 말이 줄을 이었다.

허씨는 “생리휴가를 써 보거나 쓰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휴일에 붙여서 쓰는 꼼수를 부리는 것은 잘못이지만 여성들을 싸잡아서 욕할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적 인식 미비로 사문화된 생리휴가가 여성혐오의 소재가 되고 있다. 생리휴가를 휴일과 붙여 연휴를 만드는 일부 여성의 사례가 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휴가를 마음대로 갈 수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생리휴가는 1953년 생겨났다. 근로기준법 제73조에서는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최초에는 휴가를 가도 월급이 깎이지 않는 유급휴가였다.

유급휴가 일 때도 사회적 인식 미비로 사용하는 여성이 많지 않았던 생리휴가는 2004년 주40시간제(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경영계는 “유급생리휴가를 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근무 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리휴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1000명 이상 사업장부터 무급이 된 생리휴가는 300명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된 데 이어 2012년부터는 2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무급이 됐다.

눈치를 보면서 사용해야 하고 월급까지 깎이는 생리휴가는 법 조문에서만 찾을 수 있는 제도가 됐다.

유한킴벌리가 지난해 20∼30대 여성 직장인 1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리휴가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다’는 응답이 76%였다. ‘1년에 한두 번 사용해봤다’는 응답은 12%로, 사실상 제대로 쓰는 사람이 없었다.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42%는 ‘상사에게 눈치 보여서’를 꼽았다. 36%는 ‘주위에서 아무도 안 써서’라고 응답했다. 여직원 비율이 절반이 넘는 직장에 다니는 정모(31)씨는 “여직원이 생리휴가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연차휴가도 다 못 쓰는데 생리휴가를 어떻게 쓰겠느냐”고 말했다.

여성들은 “쓰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생리휴가를 남성들은 “생리휴가는 다 꼼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쓰는 사람은 적은데 욕먹는 사람은 많은 상황이다.

성탄절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에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생리휴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오늘 우리 회사에 생리휴가를 쓰고 안 나온 여직원들이 상당수다”라며 “이런 식으로 악용하니 팀워크에 도움도 안 되고 사기만 떨어진다”라고 적었다. 지난해 성탄절은 목요일이라 금요일에 휴가를 쓸 경우 연휴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여성들이 생리휴가를 사용해 연휴를 길게 만든다는 불만은 징검다리 연휴가 있을 때마다 나오고 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패러디해 이 같은 행태를 꼬집은 그림이 떠돌 정도다. 일부 여성의 ‘꼼수 사용’에 대한 비판여론이 여성혐오로까지 번진 것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은 “연차휴가를 제대로 보장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생리휴가 사용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며 “(남녀가) 서로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내가 아플 때, 필요할 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태·이지수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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