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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환자도 가족"…병원 격리 아닌 가정·사회서 보듬어

입력 : 2014-12-31 19:06:15 수정 : 2015-01-05 14: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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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서 찾은 해법 (상) 예방·사회적응에 초점 맞춘 英 치매를 노망(老妄)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늙어서 망령이 들었다’는 뜻인데, 나이가 들면 으레 찾아오는 거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치매의 원인이 속속 밝혀지면서 이제 치매는 뇌질환으로 분류된다. 치매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치매 예방이나 치료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집에 치매 환자가 생기면 온 가족의 삶이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31만명을 넘어섰다. 6년 전 16만명에서 5년 새 두 배로 뛰었다. 고령화와 함께 찾아온 불청객이다. 유럽 등 보건복지 선진국의 치매 예방 대책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연말 영국과 네덜란드를 찾았다.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두 나라의 치매 대책을 통해 우리의 정책방향을 점검해 본다.

◆노인요양시설, 안전이 최우선


지난해 11월28일 오후(현지시간) 찾은 영국 리즈의 초퍼힐 요양원. 붉은 벽돌에 둘러싸인 단층 건물로, 얼핏 주변의 일반 가정집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이곳은 90병상 규모의 민간 요양시설이다. 그룹홈 형태의 일반 요양원이 많아야 20∼30명을 수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국 내에서도 규모가 큰 편이다. 곳곳에서 섬세한 안전장치가 눈에 띄었다. 복도에는 직원들이 오고 가며 시설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화면에는 건물 전체 도면과 함께 비상구 위치와 화재알림 장치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복도 끝에는 비상시 문을 살짝 밀기만 하면 열리는 장치도 마련됐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긴급 탈출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벽과 시설물들의 색과 촉감도 제각각이었다. 멋있고 다채롭게 꾸미려고 한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비상 상황을 염두에 둔 장치였다. 트레이시 카터 수간호사는 “치매 환자들의 인지능력을 고려해 중요한 시설은 특별한 색깔이나 촉감을 줘 구분하기 쉽도록 했고, 환자들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구분하기 어려운 색을 쓰거나 커튼 등으로 가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비상시에도 혼란을 막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인테리어 설비는 영국 소방법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5월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치매 환자가 불을 질러 21명이 숨진 뒤에야 부랴부랴 요양병원 관련 소방규정을 정비했다.

◆치매, 예방과 대응이 최고의 대책

영국에서는 보건당국이 치매 의심 환자를 빨리 진단하는 의사에게 건당 55파운드(약 9만4000원)의 포상금을 주는 정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의사의 본분인 질병 진단에 금전적 이득을 주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만만찮지만 영국 정부는 논란보다 치매 진단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로레인 잭슨 영국 보건부 치매예방정책 담당자는 “현재 55% 수준인 치매 진단율을 2015년 3월까지는 67%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이를 위해 조기진단 인센티브와 치매의심환자를 찾기 위한 의료정보 활용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라고 말했다.

치매를 조기에 발견해 발병을 2년만 늦춰도 20년 후에 치매 유병률이 80% 수준으로 낮아지고 중증도도 감소한다는 연구결과 때문이다. 치매 초기에 약물치료를 하면 5년 후 요양시설 입소율이 절반가량 떨어진다는 통계도 있다.

진단만큼 예방이 중요하다. 영국 정부는 50세 이상 국민 200만명의 병력과 생활방식 정보를 모아 인지연구, 뇌 영상법, 유전학 등을 통해 치매 가능성이 큰 사람을 가려내고 치매 유발 원인을 찾는 연구에 착수했다. 영국은 이 정책의 소관을 보건부에서 최근 총리실로 한 단계 높였다.

◆치매, 사회와 가정이 보듬어야

‘생활 속의 치매 관리(Living Well With Dementia)’. 영국의 치매 관련 안내 책자에 빠지지 않는 문구다. 영국 보건부의 한 관리는 “영국은 더 이상 치매환자를 외부와 격리시킬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며 “치매 환자도 가족과 함께 자신이 살던 집에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영국에서 만난 치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를 사회에서 격리시켜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영국은 과거 요양시설 위주의 치매 대책에서 가정 중심의 대책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 왔다. 치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다.

라파엘 위튼버그 런던 정치경제대학(LSE) 개인사회서비스연구원 박사는 “영국에서는 생활지원형, 즉 가정형 요양시설과 의료지원 요양시설로 나뉘어 서비스를 제공 중”이라며 “가정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도록 지원하는 건 노령화로 인해 늘어난 예산 부담을 완화시켜준다”고 말했다.

요양원에서 20년간 치매 환자를 돌봐 온 카터 수간호사는 “10여년 전만 해도 치매 환자는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며 무조건 요양시설로 격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짧은 시간이라도 가족과 함께 보내고 단체 활동이나 취미 생활을 계속 해나가는 쪽으로 치료의 방향이 달라졌다”고 했다. 현재 영국 내에는 치매 환자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지역모임이 72개나 된다.

◆치매와 맞서기 위한 범정부적 대응체계 구축

영국은 지난해 ‘치매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치매 관련 연구와 회의를 이끌어오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해 “세계적으로 치매 연구 비용은 암 연구비의 5분의 1수준이며 15년간 시장에 나온 치료제도 3종에 불과하다”며 “각국 정부의 치매 연구 장려와 빠른 신약 실험을 위한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영국 보건부에 따르면 영국은 2009년 2800만파운드(490억원)에 그쳤던 예산을 계속 끌어올려 올해 6600만파운드(1150억원)까지 늘렸다. 중앙정부는 치매 예방정책 수립에 집중하고 지방 정부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작년 11월 말에는 치매 정상회의 후속 조치로 일본 도쿄에서 ‘새로운 돌봄과 예방모델’이라는 주제의 회의도 열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주요국들이 치매 대책을 예방중심, 조기검진과 적절한 개입, 지역사회를 위한 돌봄 등 3가지 초점에 맞춰 대응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런던·리즈=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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