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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독 시험' 공부보다 값진 배움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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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04 11:49:31 수정 : 2014-12-04 11: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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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사회 도약 프로젝트] 신뢰사회 이렇게 만들자
양심이 가장 무서운 감독…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신뢰는 자산이다.’

신뢰에 관해서 가장 자주 입에 올리고 듣는 말 중에 하나다. 신뢰가 생기면 조직이나 개인에게 큰 이익이 된다는 뜻이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루아침에 자산가가 될 수 없듯이 신뢰도 차근차근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뢰사회 도약에 왕도가 없다면 시작은 학교교육이 돼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학창시절 인성교육을 통해 몸에 익힌 신뢰는 평생 좋은 영향을 미친다. 경쟁 위주의 한국 교육에서 신뢰 관련 교육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곳곳에서 희망이 싹트고 있다. ‘무감독 시험’을 통해 신뢰를 몸에 익히게 하는 학교들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이제는 서로 믿게 됐다”는 말 속에서 신뢰사회로 가는 길을 엿볼 수 있다.

전남 여수석유화학고 교사와 학생들이 지난 5월 무감독 시험 첫 시행을 앞두고 커닝을 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하고 있다.
여수석유화학고 제공
◆‘실천형 신뢰형성 교육’ 무감독 시험


석유화학 분야 마이스터 고등학교인 전남 여수석유화학고는 마이스터고로서는 최초로 지난 5월부터 무감독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감독 교사가 시험 10분 전 교실로 가 “함께해요 바른 양심, 바른 행동”이라는 구호를 학생들과 함께 외친 뒤 시험지를 나눠주고 나갔다가 종료 15분 전 들어가 잘못 쓴 답안지를 바꿔주고, 시험이 끝나면 답안지를 걷어가는 방식이다.

무감독 시험을 실시하는 이유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인성’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조영만(57) 교장은 “인사담당자들에게 인재선발 기준을 물어보면 첫째부터 셋째까지가 인성”이라며 “착한 일을 하라는 것이 막연해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시험 전 학부모들에게 자녀가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0점 처리하겠다는 각서를 받는 등 무감독 시험의 부작용을 위한 장치를 해 놓았지만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 조 교장은 “부정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제철고도 올 들어 무감독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이 학교는 신뢰·정직·양심 등의 가치를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무감독 시험을 도입했다.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교육청 주관 모의고사 4회, 사설 모의고사 4회를 감독 교사 없이 치렀다.

모의고사이기 때문에 오히려 커닝의 유혹에 더 시달릴 수도 있지만 평균 점수는 지난해와 비슷하게 나왔다. 학교 측은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다는 판단하에 중간·기말고사 등 정기시험에도 무감독 시험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전남 여수석유화학고 학생들이 지난 7월 기말고사 기간에 감독 교사 없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석유화학고 교사와 학생들은 “무감독 시험을 치른 뒤 서로 신뢰가 쌓였다”고 입을 모았다.
여수석유화학고 제공
◆“서로 믿을 수 있게 됐다”


시험이 성적과 직결되는 것이다 보니 처음에는 우려가 많았지만 지금은 교사와 학생 모두 “신뢰가 쌓였다”고 입을 모은다.

조 교장은 “우리 스스로 해냈다는 의식이 생기고 시험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게 됐다”고 자평했다. 여수석유화학고 정민선(35·여) 연구부장은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학생이나 교사가 서로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포항제철고 김재한(46) 연구부장은 “어떻게 보면 작은 경험이지만 사회에 나가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고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혁(17·여수화학고 2)군은 “친구들과 학교에서 1∼2년 만난 게 전부이지만 무감독 시험을 통해 진짜 신뢰를 쌓았다”며 “이제는 정말 믿을 수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무감독 시험을 통해 경험한 신뢰에 대한 생각도 막힘없이 쏟아냈다. 박정훈(16·〃1)군은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신뢰”라며 “이게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친구, 직장동료 사이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송현지(17·〃2)양은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인간관계가 이뤄진다”며 “신뢰가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뢰형성 교육 일찍부터 시작해야


신뢰사회 구축을 위한 학교교육의 중요성은 각종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청소년 정직지수’ 조사에 따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윤리의식이 낮아지는 결과를 보였다. 친구의 숙제를 베껴서 내는 것에 대해 초등학생은 30%가 ‘괜찮다’고 답했지만 중학생은 69%, 고등학생은 78%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숙제를 하면서 인터넷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베끼는 것도 초등학생 47%, 중학생 56%, 고등학생 64%가 개의치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윤리의식에 대한 학교에서의 교육이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윤리의식이 낮아지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간 신뢰가 쌓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전문가들은 학생 스스로 경험을 통해 윤리의식을 높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배규한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은 “가능하면 청소년들에게 주체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며 “학생들이 양심의 문제를 스스로 느끼고 잘못이 부끄러운 일임을 알게 한다면 신뢰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태·권구성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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