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명확히 할 것이 있다. 본지는 허위 사실이나 날조 문건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킨 게 아니라는 점이다. 본지는 어렵게 입수한 ‘청(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란 청와대 문건에 취재를 더해 파악한 각종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전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의혹도 제기했다. 본지의 이런 보도를 놓고 청와대가 다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청와대는 어제 본지 보도가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청와대에 엄중하게 묻게 된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문건에 바탕을 둔 사실보도가 명예훼손 행위인가.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은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인가.
청와대가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다. 세간에 ‘비선 실세’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씨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다. 다수 국민의 뜻도 다르지 않다. 민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에서 “보도에 나오는 내용은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했다. ‘찌라시’급의 뉴스가 횡행하는 세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공식 문건이 증권가의 찌라시와 같은 취급을 받을 수는 없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문건의 기술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다. 문건을 보면 정씨가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 등 청와대 인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불법 개입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을 번지게 하려 했다는 등의 민감한 내용도 즐비하다. 이런 충격적 보고를 그저 무시하고 말 일인가. 이런 문건은 그 자체로 권력암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물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문건에 관련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은 이미 사표를 제출해 야인이 됐다. 보고서 작성자는 경찰로 복귀했다. 이렇게 마무리지어도 되는 일인지 의아해하는 국민이 많다. 청와대는 그 어떤 확인 과정을 통해 해당 문건이 묵살되기에 이르렀는지 명료하게 밝혀야 한다. 조 비서관 등이 퇴진한 이유도 국민에게 알릴 일이다. 정씨 등의 국정 개입 의혹이 투명하게 해명돼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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