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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다가 대학 초년생 큰딸아이에게서 문자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아빠, 이번엔 대학 교수님이시네요. 대단하시데요.” “얼마 전엔 어떤 정치인과 검찰총장하셨다는 분이 성추행을 해 뉴스에 나더니 ㅋㅋ.” 순간 낯이 불덩어리가 됐다. 부모치고 자식이 성추행과 같은 ‘이상한 얘기’ 하면 허물없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성추행 자체가 좋은 말이 아닌 탓이다. 사기를 쳤다든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도 성추행이라는 말은 어감에서 느껴지듯 왠지 듣기만 해도 낯이 뜨겁다. ‘일방적인 성적 만족을 위해 물리적으로 신체접촉을 가함으로써 상대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성추행의 정의를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고서에서도 성추행 얘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성추행은 정의가 내려지기 전까지 숱하게 있었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서일까. 단순히 어깨를 툭 치고 어깨에 손을 얹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그 수법도 지능화돼 가고 있다. 최근 몇몇 사례가 잘 말해준다.

인터넷을 숱하게 달군 전직 국회의장, 전직 검찰총장의 수법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칠십 넘은 노인네치고는 ‘주책 바가지’다. 전직 국회의장은 “이쁜 손녀 같다”며 가슴을 툭툭 쳤고, 전직 검찰총장은 “너는 내 아내보다 백 배 예쁘다”며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고를 쳤다.

따지고 보면 전직 국회의장과 전직 검찰총장 건은 약과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강모 교수의 예는 더 낯부끄럽다. 정확한 사실관계야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대학교수가 성추행에 연루됐다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다. 10년 동안 제자 20여명을 성추행했다면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안 봐도 비디오다.

성추행의 여러 유형 중 ‘갑질 성추행’은 악랄의 극치다.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데 익숙해져 젊은 여성, 학점과 미래를 교수에게 의지해야 하는 여성 제자를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전자는 버릇이고, 후자는 지능범이다.

“손녀 같은 캐디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명찰을 건드렸을 뿐인데”, “사랑스러운 나머지 끌어안아 줬는데”, “제자가 안쓰러워 위로해 주려 연구실로 따로 불러 팔다리를 만져 주었는데….” 우리 사회가 이런 정도라면 정말이지 팔 걷어붙이고 딸아이에게 예방법이라도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옥영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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