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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설경구 “배우가 메소드 추구하면 위험해져”

입력 : 2014-10-30 17:04:21 수정 : 2014-10-30 17: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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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독재자' 주인공 열연
이 시대 배우를 위한, 그리고 아버지를 위한 단 하나의 영화가 나왔다.

이해준 감독의 ‘나의 독재자’가 바로 그것으로, 배우 설경구(46)는 젊은 시절 ‘김일성 대역’에 빠져 20여년간이나 스스로 김일성이란 착각 속에 살아가는 아빠 성근을 연기했다.

개봉에 앞서 시사회 등을 통해 영화가 공개되자, 많은 이들이 설경구의 연기에 주목했다. ‘생애 최고의’ 혹은 ‘박하사탕 이후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후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그의 독백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으로 탄생했고, 오랫동안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 ‘혼신의 연기’란 이럴 때 쓰는 표현일 것이다.

개봉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설경구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데뷔한 지 20여년이나 된 베테랑 배우인데, 개봉을 앞두고 이제는 좀 여유로워져도 될 법한데도 그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현장에서 고생한 배우, 스태프들이 안쓰러워서라도 영화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런데 이번엔 유독 불안해요. 요즘 영화들처럼 빠른 전개는 아니니까. 첫 시사회 전날 이해준 감독으로부터 문자가 왔는데, 시쳇말로 ‘나 후달리는 거임?’이라고 왔더라고. 그 문자를 받고 나니 갑자기 저한테도 불안감이 확 몰려오는 거예요. 어찌나 불안한지. 감독 말이, 영화 시작하고 10원짜리 하나 벌어본 적 없대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늘 주문처럼 이렇게 외쳤어요. ‘야 우리 10원만 벌자’ ‘10원이 희망이다’ 이렇게….(웃음)”

이번 영화에서 그와 공연한 박해일은 설경구가 연기한 ‘성근’을 두고 “배우로서 언젠가 꼭 한 번 만나길 바라는 캐릭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제작진이 설경구에게 기대는 부분이 많았고, 설경구는 마치 신인배우로 돌아간 듯 떨리는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영화에서 성근은 배우를 꿈꿨지만 능력이 따라주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 배역(김일성) 속에 자신을 가둬버리고 만다. 연기가 아닌 배역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메소드 연기론’을 자신의 삶 속에 체화시켜버리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실제 배우인 설경구가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 역할을 메소드 연기로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정작 본인은 이를 극구 부인하지만 말이다.

“난 ‘메소드’ 같은 거 몰라요. 메소드 연기론은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본인이 진짜 캐릭터가 됐는지 아닌지 과연 누가 알겠어요? 본인만이 아는 일이지. 또 제가 작품 할 때마다 작품 속 인물이 돼버렸다면 다음 연기는 어떻게 했겠어요? 그러니까 전 절대 아니에요. 100% 창조된 인물을 그려요. ‘박하사탕’(2000) 때야 대중이 설경구라는 사람을 몰랐으니까, 주인공과 한 사람 같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신인배우들은 다 ‘메소드’일 수 있겠네요.(웃음)”

하지만 아무리 그런 마음가짐으로 연기를 해도 전작의 ‘찌끄레기’는 늘 조금씩 남는다고. 가끔은 캐릭터가 자신을 끈질기게 쫓아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의 숙명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메소드가 위험하다는 거예요. (너무 캐릭터에 빠져들면)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고. 저는 이 메소드란 놈을 전혀 추구하지도 않는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가 많아요. ‘박하사탕’ 때도 저는 김영호에서 바로 빠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할이 몇 달 동안 저를 쫓아와서 힘들었죠.”

이해준 감독은 ‘나의 독재자’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게 된 계기에 대해 “배우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한 적 있다. 설경구는 그런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도 본인은 다른 관점에서 이 작품이 끌렸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저에게 줘서 얼마나 감독님이 고마운지 몰라요. 그런데 저는 배우의 삶보다도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가 더 중요했어요. 자신의 인생 안에서 끝없는 연극을 한 주인공. 그것은 결국 아들을 위한 연극이었죠. 그 이야기가 너무 뭉클하게 다가왔어요. 아버지만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 뜨듯한 게 올라오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요.”

김일성 대역배우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설경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욱 끌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른바 ‘생활밀착형’ 연기를 추구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1970~90년대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의 이야기. 이를 위해 그는 40대부터 70대까지 특수분장을 통해 얼굴에 세월을 담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SF나 판타지보다는 지금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배우하면서 늘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해준 감독은 가장 흔한 소재에 상상력을 가미해 재미있게 풀어내는 탁월한 재주가 있죠. ‘나의 독재자’도 우리 주변의 따뜻한,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스포츠월드 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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