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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목월은 ‘나무송’에서 나무를 이렇게 예찬했다. “수목은 질시하거나 반목하는 일이 없다. 씨앗이 떨어진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천 그루이든 만 그루이든 떼를 지어 수풀과 삼림을 이루고 평화롭게 뻗어난다. 그러므로 우거진 숲이나 삼림을 보게 되면 누구나 평화를 꿈꾸게 된다.”

나무는 인간의 가장 오랜 벗이며 위안이다. 수십억년 전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했을 때 나무는 인간보다 먼저 등장한 생명체다. 인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인간은 나무에 의존해 살았다. 나무 주변에는 인간이 있었으며, 동물들이 있었다. 나무는 인간에게 생존의 보금자리였던 셈이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무화과나무에는 나무를 통해 인간을 일깨워주려는 함의가 담겨 있다. 해석은 종교, 종파마다 다를지라도 큰 맥은 이에 닿는다.

인간이 나무에게 신세를 진 사례를 든다면 어찌 한두 가지랴. 날이 갈수록 전 세계가 늘어나는 묘지 탓에 수목장 방식의 얘기가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태어나서 죽기까지 폐를 끼친 나무에게 죽어서만큼은 인간의 도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심리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원초적 유전자 속에 나무가 각인돼 있어 나무를, 숲을 동경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장례문화는 시대와 관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점차 수목장의 행태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최초로 수목장을 시작한 스위스는 숲속나무 아래 분골함없이 묻는다. 독일에선 추모목을 구입해 묻고 사망일이 적힌 알루미늄 표지를 붙이고, 영국에서는 장미 아래에 분골을 묻고 작은 동판을 꽂는 정원방식을 선호한다.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도 늘어나는 묘지가 국토를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는 현상이 사회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다. 어떤 장례방식이 좋으냐를 두고 논란이 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우리나라도 2008년에 법으로 자연장을 허용하기에 이르렀으니 분명한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엊그제 보건복지부 조사결과 우리나라 사람 10명 가운데 8명이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한다고 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더 나아가 나무 아래 묻히는 수목장이면 어떨까. 동식물이 죽어 거름이 되듯, 인간의 육신도 흙으로 돌아간다. 생각하기에 달렸다. 한 줌의 재로 흩날릴 것인지, 따사한 뒷동산에 서있는 고풍의 소나무 아래 묻힐 것인지….

옥영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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