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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파네타는 ‘배신의 아이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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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19 21:44:42 수정 : 2014-10-19 22: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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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누린 전 美 국방 회고록서 오바마 맹공
친박인사 행보와 비슷 박대통령 ‘쓰라림’ 감수 폭 넓게 인재 등용하길
한국에서 정치부 기자 시절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최측근에게 들은 이야기다. YS는 재임 시절에 장관을 잘 잘랐다. 특히 장관을 쫓아내면서 사전에 일언반구도 없을 때가 많았다. 아침 출근 길에 라디오 뉴스에서 해임 소식을 듣고 혼비백산한 장관도 있었다. 그런 일을 당한 장관도 사람인데 서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느닷없이 잘린 장관의 불만은 청와대 측근을 통해 YS에게 전달됐다. 그 측근은 장관을 바꿀 때 미리 귀띔을 해주는 게 좋겠다고 YS에게 넌지시 건의했다. YS는 말했다. “야, 한번 시켜줬으면 된 것 아니야.” 이 측근은 어느 날 YS에게 “현직 장관 중에서 누가 제일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YS는 “지금 장관으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 사람이 제일 좋지”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떤가. 그는 현직 장관을 잘 바꾸지도 않지만 마지못해 바꿀 때에는 해당 부처에 직접 찾아가 국민 앞에서 그 장관이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오바마는 자신의 내각에서 일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와 리언 패네타 전 국방장관이 떠날 때에도 어김없이 미국인을 대신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직접 전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지금 약속이라도 한 듯 앞다퉈 회고록을 내고, 오바마와 현 정부의 속내를 까발려 책 장사를 하고 있다. 누가 오바마에게 어느 장관이 제일 마음에 드느냐고 물으면 그가 ‘회고록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답변할 것 같다. 힐러리는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이니 그가 자서전으로 정치 재개의 시동을 거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이츠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다. 오바마는 미국 내 보수 진영을 의식해 그를 그대로 현직에 잔류시켰다. 그런 게이츠가 회고록으로 오바마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것도 눈감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패네타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올해 76세의 노정객은 빌 클린턴, 오바마 대통령 정부에서 천수를 누렸다. 그는 8선 연방 하원의원 출신으로 클린턴 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다. 오바마 대통령 정부에서는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그런 그가 왜 아직 임기가 2년도 더 남은 현직 대통령 오바마의 등에 시퍼런 비수를 꽂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패네타는 회고록 ‘값진 전투들’ (Worthy Fights)에서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시리아 내전 등에 임하는 오바마를 ‘열정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대학 법학 교수’라고 힐난했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백악관이 패네타에 비분강개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회고록 출간 시점이다. 오바마는 급진 이슬람 과격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발호하는 시리아를 공습하며 제2의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이런 때에 미군 최고통수권자의 지도력에 흠집을 내는 것은 이적행위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오는 11월 4일 상·하 의원 등을 새로 뽑는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패네타의 회고록 내용과 연일 계속되고 있는 언론 인터뷰 내용은 공화당 후보들이 오바마 정권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무기로 선거전에 이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딕 모리스는 “힐러리의 사주를 받은 패네타가 힐러리의 대권 가도를 열어줄 목적으로 오바마 때리기에 나섰다”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패네타의 행보는 한국에서 일부 ‘친박’ 인사들이 박근혜 대통령 정부를 공격하는 배경을 반추해보게 만든다. 한국과 미국에서 파워 엘리트가 자기 잘난 맛에 빠지는 나르시시즘과 진정한 애국심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충성과 국민에 대한 충성을 냉정하게 구분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후자를 택하는 것은 장관 등 파워 엘리트의 신성한 역사적 책무이다. 연쇄 인사 실패로 궁지에 몰린 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장관을 찾는 YS가 아니라 뼈아픈 배신을 감수하면서 폭넓게 인재를 찾는 오바마 대통령을 벤치마킹하길 바란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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