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일반 증인 백태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업무보고를 서면으로 하라”는 새누리당 소속 정우택 위원장의 거듭된 요구를 거부하자 국감장은 발칵 뒤집혔다. 정 위원장은 “처장, 지금 국회 설득하러 왔어요”라고 질타했다. 박 처장이 이날 오후 늦게 결국 사과했지만 ‘국회 무시 논란’의 파장은 컸다. 막무가내형 피감기관장과 함께 ‘도피형’ 증인도 국민의 공분을 샀다.
국회 보좌관 출신 한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는 이날 통화에서 “출석 안 시키는 대관 담당자가 가장 능력자”라고 말했다. 일반 증인으로 채택된 대기업 총수 등은 출석하면 빌미를 주게 되니 아예 나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지연, 학연을 동원해 총력전을 펼친다. 그는 “해외 출장이 가장 확실하다”며 “사유서가 받아들여지도록 평소에 네트워크를 잘 만들어 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위 소속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국감에서 방산업체 5개에 대해 증인을 신청했는데 큰 업체 3개는 빠져나가고 작은 업체 2개만 채택됐다”고 전했다.
사안상 해외출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증인은 직접 맞서는 수밖에 없다. 예상 질문을 상황별로 만들고 리허설까지 진행한다. 최근 일부 대형 로펌도 국감 시장에 뛰어들었다.
‘배째라 유형’도 있다.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거나 아예 대답을 하지 않는 유형이다. 16일 정무위 국감에 출석한 효성그룹 이상훈 부회장은 일부 질문에 “지금 재판 중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새정치연합 김기식 의원실 관계자는 “기업인 증인들의 천태만상을 봐 왔지만 이번은 가히 신유형”이라고 꼬집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재부 차관이 왜 농해수위에 나가느냐”며 방 차관에게 직접 출석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의 조사결과 이번 국감에서는 법사위, 안전행정위, 보건복지위 등 총 6개 상임위에서 피감기관의 자료제출 거부 사태가 빚어졌다.
◆여야 의원 질의 백태
16일 산업통상자원위 국감에서 새누리당 김동완 의원은 조환익 한전 사장을 상대로 질의시간 7분을 모두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당진시 현안을 묻는 데 썼다.
그는 당진지역 추가송전선로 문제로 갈등이 커지는 것과 관련해 조 사장에게 “사전에 본 의원에게 말하면 내가 먼저 주민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꼭 주민에게 항의를 먼저 들어야 하나”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국감장이 지역구 민원 추궁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호통이나 비아냥을 넘어 엉뚱한 주장도 나온다. 김광진 의원은 14일 국방위 국감에서 육사 편중의 장성인사를 지적하던 중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재인 의원님이 대통령이 되셔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겠다”고 엉뚱한 말을 했다. 당시 국감장에는 문 의원도 있었다. 지적의 적절성을 떠나 너무 민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의원끼리 고성을 주고받거나 말싸움을 하는 것은 단골메뉴다. 이날 법사위 국감에서는 새정치연합 서영교 의원이 질의 중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을 향해 “앞에서 구시렁구시렁하니까 신경쓰인다”고 말해 김 의원으로부터 “말을 좀 가려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공박을 당했다. 언쟁 끝에 서 의원은 “질의하는 데 (김 의원이) 계속 방해 행위를 해 작정하고 표현을 썼다”며 “다음엔 쓰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과해야 했다.
국감의 질이 떨어지는 동안 의원들은 딴짓을 한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8일 환경노동위 국감 중 비키니 차림의 여성 사진을 보다가 사진이 찍혀 망신을 샀다.
주중 한국대사관 감사에 나선 외교통일위 소속 여야 의원은 13일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 ‘금면왕조’를 봐 구설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권한 행사 제약이나 국민의 현명한 투표 등이 의원들의 몰지각한 행태를 걸러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홍금애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 총괄집행위원장은 이날 통화에서 “의원이 된 뒤 많은 권한이 몰려 ‘슈퍼 갑’이 되다 보니 이런 행동을 보인다. 국민이 현명한 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윤지희 기자, 김태훈·이도형·홍주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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