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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로…"사장님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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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13 06:00:00 수정 : 2014-09-14 09: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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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연수생제 보완… 2004년 도입, 15개국 근로자에 취업 비자 발급
고용주의 동의 없인 이직 불가능, 일 그만두려 해도 ‘허락’을 받아야
“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2일 서울의 한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 사무실에서 만난 네팔인 차마르(33·가명)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무릎 위에 놓인 그의 한쪽 손은 손가락이 3개뿐이었다. 올해 초 일어난 사고의 흔적이었다.네팔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2012년 한국 땅을 밟았다. ‘기회의 땅’으로 여겼던 한국에서 그가 처음으로 배운 한국말은 ‘개××’라는 욕설이었다. 공장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그를 이름이 아닌 개××라고 불렀다.


공장에 딸린 작은 방은 보일러조차 작동되지 않아 겨울에는 외투를 껴입고 자야 했다. 사장은 “나머지는 대신 저금했다가 나중에 주겠다”며 매달 임금의 50% 정도만 지급했고, 그마저도 밀리는 일이 많았다. 관리반장은 수시로 그의 머리를 때리거나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며 무시하는 발언을 퍼부었다. 차마르는 “나도 감정이 있고 아픔을 느낀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참고 견뎠지만 그는 올해 초 사고가 나면서 공장에서 쫓겨났다. 밀린 임금을 주겠다던 사장은 몇 달째 차일피일 약속을 미루고 있다. 차마르는 “내가 한국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못했을 것”이라며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 조건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10여년 전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유행하던 “사장님 나빠요”란 말은 이들에게는 웃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근로 복지를 위해 ‘고용허가제’를 내놓았지만 이는 오히려 이들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있다. 여기에 사그라지지 않는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적 시선은 이주노동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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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의 그늘

정부는 2004년 8월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15개국 근로자들에게 국내 근로자와 같은 대우를 보장하는 취업비자를 발급하는 제도다.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가 ‘연수를 통한 선진기술 이전’이란 명목으로 저개발국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악용됐던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불법체류자가 줄어드는 등 고용허가제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고 있지만,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고용허가제가 반인권적이라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가 가진 가장 큰 문제로 ‘사업장 변경 제약’을 꼽는다. 관련 법률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일을 그만두려면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사전 정보 부족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하지만, 한번 일자리가 정해진 후에는 고용주의 동의 없이 이직이 불가능하다. 일부 고용주들은 “근무지를 옮겨줄 테니 돈을 달라”고까지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3년의 노동기간이 끝나고 재고용 계약을 할 때도 고용주의 동의가 필요하기에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로부터 폭행 등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항의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수짓(29)은 지난 7월 회사 직원으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했다. 함께 있던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는 일하다 맞는 것이 다반사니 참으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갑작스럽게 해고된 수짓은 관련 단체의 도움으로 경찰서에 임금체불 및 폭행 진정서를 냈지만, 고용주의 보복을 두려워한 동료들은 증언을 회피하고 있다.

농업, 건설 등의 근로 분야를 한번 선택한 뒤에는 다른 분야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이주노동자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노무법인 ‘노동과 인권’의 공성수 공인노무사는 “최근 농업 부문 취업이 증가하고 있는데, 농장에서의 노동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농장은 근로기준법상 휴가일이 보장되지 않고,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아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입증이 어렵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는 2012년 고용허가제 관련 법규를 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공 노무사는 “대부분 휴일도 없이 하루 종일 일을 하지만 근로 시간 등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자료를 찾기 어렵다”며 “농장을 떠나고 싶어도 농업 이외 분야 일을 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별과 무시 만연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의 기저에는 이주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사회적 편견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저들에게는 저렇게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조성애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은 “외국인 노동자를 존중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단순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5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는데 ‘백인이 지나가면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꺼려진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근데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며 “이 같은 편견은 평소 접하는 문화와 언론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주노동자들의 범죄가 많다는 점을 들어 이들을 ‘위험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 10만명당 범죄 피의자 수는 2192명으로, 국내 인구 10만명당 범죄 피의자(4673명)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외국인 범죄 건수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이는 외국인 인구 증가에 따른 현상이다.

한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35)씨는 “수년 전 미국에서 한국계 학생이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질렀을 때 미국인들이 ‘한국인 범죄자라 위험하다’고 했다면 억울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특정 민족의 문제로 비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몽골에서 온 A씨는 “겉모습만 보고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내가 몽골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태도가 변하는 것을 많이 봤다”며 “출신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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