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군 서면 갈천리와 홍천군 내면 명계리를 잇는 구룡령 옛길은 한계령, 미시령에 비해 산세가 부드러워 옛날부터 영동 지방 사람들이 한양으로 갈 때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길은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버려졌다. 일제가 동해안 지역 물자 수탈을 위해 1908년 새 도로를 놓았는데, 이게 지금의 56번 국도다. 1994년에는 번듯하게 포장까지 되며, 옛길은 완전히 잊혀졌다.
수십년간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태고의 자연을 담고 있는 구룡령 옛길의 홍천 구간(정상∼명개리). 양양 구간(정상∼갈천리)에 비해 덜 다듬어졌고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계곡을 끼고 있어 풍광은 더 빼어나다. |
전 구간을 걷기 부담스러운 사람은 정상에서부터 양양이나 홍천 방향 중 하나를 택해 내려간다. 대개는 명승으로 지정되며 유명해지고 정비가 잘돼 있는 양양 구간을 택한다. 그러나 양쪽을 모두 걸어본 사람은 홍천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는 게 구룡령백두대간방문자센터 숲해설체험지도사 남상수(69)씨의 설명이다. 홍천 구간의 풍광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양양 쪽이 능선을 따라 가는 반면 홍천 쪽은 계곡을 따라 간다. 물이 흐르니 식생도 다양하다. 양양 쪽은 금강송 등 침엽수가 많지만, 홍천 쪽은 활엽수가 많아 숲이 훨씬 더 풍성해 보인다.
이끼바위. |
수십년간 인적이 끊겼던 길에서는 천연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울울창창한 숲 속 바위는 두꺼운 이끼와 양치식물로 덮여 있다. 아직 길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수풀로 덮인 구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대단한 절경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풋풋하고 싱싱한 날것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호젓하고 청량한 구룡령 트레킹의 또 다른 재미는 옛길에 얽힌 여러 이야기다. 남씨 설명에 따르면 옛길 정상에는 산신당이 있었다. 산신당 일대는 산적들의 활동무대였다. 지금 센터 인근에 산적 소굴이 있었다고 한다. 산적의 출몰이 잦자 행인들은 홍천 쪽 산아래 주막에서 10여명씩 모여 고개를 넘었다. 그 주막터가 지금도 명개리 쪽에 남아 있다.
명개리 쪽 고개 입구에 남아 있는 주막터. |
탄산이 톡 쏘는 맛을 느끼게 하는 영골 약수. |
코끼리 얼굴을 담은 ‘코끼리나무’ |
원숭이가 앉아 있는 모양의 ‘원숭이나무’ |
양양 쪽 길은 홍천 구간에 비해 훨씬 잘 다듬어졌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은 독특한 지명도 여럿이다. ‘횟돌반쟁이’는 횟돌을 캐던 장소라는 뜻이고, ‘솔반쟁이는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홍천과 양양이 경계를 정할 때 양양 수령을 업고 뛰었던 노비의 묘가 있다고 해서 ‘묘반쟁이’라고 불리는 곳도 있고, 철광석을 실어 날랐던 ‘옛날 삭도’도 남아 있다. 이들을 뒤로하고 군데군데 서 있는 멋진 금강송을 지나 길을 다 내려오면 갈천마을 입구에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이 나타난다. 얼굴에 흐르는 땀 씻고 잠시 쉬어가기 딱 좋다.
양양·홍천=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여행정보(지역번호:033)=서울에서 출발해 인제군 상남면으로 가려면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나들목으로 나와 44번 국도, 451번 지방도로로 갈아타면 된다. 최근 미산계곡에 펜션, 민박집이 여럿 생겼다. ‘바람부리펜션’(463-9855)에는 쇠줄과 도르래를 이용해 내린천을 건너야 들어갈 수 있다. 단층건물인 ‘강릉모텔’(461-6708)은 상남면의 유일한 모텔이다. ‘미산막국수’(463-0539)는 막국수와 편육으로 유명하고, ‘부린촌’(463-0127)은 매운탕과 닭백숙을 내놓는다. 리버버깅 체험장(011-219-1307)은 미산계곡 중간쯤에 자리해 있다. 살둔마을 ‘살둔산장’(435-5984)은 요즘 민박과 오토캠핑장을 운영한다. 구룡령 옛길 탐방을 양양 쪽에서 시작하면 갈천리종합복지회관을 찾으면 된다. 56번 국도변에 ‘구룡령 옛길’ 표지판이 붙어 있다. 홍천 쪽에서 출발하려면 명개리마을회관을 찾아간다. 정상에서 한 구간을 택해 내려가려면 구룡령백두대간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하면 된다. 이곳의 숲해설체험지도사 남상수씨(010-4860-7979)에게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홍천군 내면의 ‘삼봉 깊은산골’( 435-3989)은 구룡령 바로 아래 식당으로, 민박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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