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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마주한 ‘간청재’… 자연과 인간의 삶 조화 이루다

입력 : 2014-08-07 22:02:20 수정 : 2014-08-07 22: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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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99〉 자연
# 자연에 대한 예의

일 년 중 가장 심한 더위가 삼복더위인데, 며칠 전 중복을 지났다. 기후가 많이 변해서 말복이 지나도 늦더위에 더 시달릴 때가 있지만, 그런 더위에 지친 심신을 사람들은 음식으로 보양하곤 한다. 요즘은 복날에 주로 삼계탕을 많이 먹지만, 원래는 보신탕을 먹는 날로 알고들 있었다.

사실 개라는 동물이 워낙 인간과는 친밀한 동물인지라 사람들이 기겁을 하지만, 복날이면 생각나는 한자가 하나 있다. 그럴 연(然). 당연하다, 틀림없다, 명백하다…뭐 그런 의미의 글자다. 그 구성을 보면, 고기를 뜻하는 육(肉)과 개를 뜻하는 견(犬), 불을 뜻하는 화(火)로 이루어져 있는 ‘회의문자’이다. 그리고 그 해석을 보면 ‘개고기를 불에 구워먹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뜻이라고 포털에서 제공하는 인터넷사전에 나와 있다. 또한 진나라 때 만들어진 한자사전인 설문해자에서는, 저녁에 개를 구워 지내는 제의를 뜻하는 것으로 나온다. 당연히 지내야 할 제의라는 뜻에서 ‘그러하다(如是)’는 의미로 정착된 것인데,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엽기적인 글자가 또 있겠는가 싶다.

그런데 그럴 연 자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단어는 자연(自然)이다.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함’을 뜻한다. 혹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짐을 의미한다. 그런 사전적 의미와 더불어, 철학적으로 자연이란 가장 높은 단계를 의미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사람은 땅의 법칙을 본받고, 땅은 하늘의 법칙을, 하늘은 도의 법칙을, 도는 자연의 법칙을 본받는다.)

그러나 자연은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의 덕으로 먹고살아 늘 고맙게 생각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폭압적으로 변하는 자연에 대한 공포는 엄청난 것이었다. 자연의 폭압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 군주의 의무였고, 사람들은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자연을 대했다.

그러던 사람들의 자세가 변한 것은 근대 무렵이 아닌가 싶다. 물론 서양의 근대이긴 하지만, 산업화가 되고 과학이 발달하고 이성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이 생겨나면서부터다. 사람들은 자연을 제어하고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대가 되면서 그런 오만은 극에 달하고, 전쟁이나 자원 확보를 위해 자연을 무수히 훼손하게 된다. 그러다 자연이 조금씩 이상 징후를 보이자,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자연을 보호하자는 이야기로 발전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만큼 가당치 않은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보호하겠는가.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보호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시대에서 자연보다 강하다고 착각을 하는 모양이지만, 인간은 자연에 비해 한없이 약한 존재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기술의 수준이 높아져도, 한 시간 내린 비에 물난리가 나서 많은 피해를 당하고 한 번의 큰 파도에 도시가 파괴된다. 그 잠시의 요동으로 인간은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는다. 자연은 한없이 거대한 것이고 무서운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앙갚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예전 우리 선조들이 해왔던 방식밖에는 없다. 겸손하고 조심하고 삼가는 자세. 그것이 자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지리산 천왕봉이 마주보이는 경남 함양의 마천에 지은 ‘간청재’. 단순한 일자집의 형태에 삼면이 자연과 만나는 누마루를 내단 것이 이 집의 유일한 호사다.
박영채 제공
#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 우리나라 집

지난봄 영파라는 중국의 오래된 도시에 있는 보국사라는 절에 간 적이 있다. 그 절은 송나라 때 지어진 유명한 건축물이어서 무척 기대를 하며 보러 갔고, 역시 치밀한 구성과 아름다운 건물 군이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 명작이었다. 그런데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우리의 그것과 아주 달랐다. 절은 무척 경사가 급한 곳에 있었다. 물론 그런 입지는 우리나라에도 아주 흔하다. 그러나 그들은 경사지에 네모난 그리드를 치고 인위적으로 단을 조성하여 직선화된 길과 계단을 만들어 자연을 그 안에 가두었다. 아주 정연한 질서 안에 길이 생기고 전각들이 생겨났다.

가령 비슷한 입지의 부석사에서는, 사람들은 위를 향해 계속 올라간다. 계단이 연속되며 땅의 흐름에 맞추어 조금씩 길을 비틀고 간다. 드러나는 규범이나 구속은 전혀 없고, 그저 자연의 질서 안에 인간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끼어든다.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자연에 대한 생각은 그런 관점에서 비롯한다. 자연과 적당히 타협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지리산 천왕봉이 잘 보이는 함양군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마천에 집을 한 채 설계해 지었다. 지리산은 참으로 묘한 산이다. 그리고 나와 지리산의 관계도 참으로 묘한 인연의 고리로 엮어져 있다. 내가 말로만 듣던 지리산에 처음 간 것은 1996년 사무실을 열기 직전이었다. 그 후 사무실을 내고 처음으로 수주한 일이 지리산 중턱에 짓는 집이었다.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인연으로, 일이 하나 끝나면 또 다른 지리산 언저리의 땅이 우리를 찾아왔고, 그 일을 마치면 또 다른 일이 찾아왔다. 어떤 때는 지리산 무릎께에 어떤 때는 지리산 발치에 어떤 때는 지리산 등짝에…아무튼 나는 덕분에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통해 지리산을 단골집 들락거리듯 다녔다. 그리고 덕유산을 지나고 지리산 근처에 이르면 무언가가 가슴을 ‘퉁’ 하고 두드렸고, 묘하고도 묵직한 안도에 휘감기곤 했다.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이, 어떤 감동은 가슴을 거쳐 코로 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집을 지은 창원마을은 지리산 둘레길로 올라가는 길목이라 조용하지만, 등산객들을 기다리는 민박집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빼꼼 쳐다보는 동네다. 서울에서 내려가 산속에서 살겠다는 씩씩한 부부가 살게 될 집이었다. 그 땅은 원래 어떤 스님이 절을 지으려다 내놓은 땅이었다고 한다. 땅 모양을 보니 길쭉한 것이 역시 절 배치에 어울리긴 하는데, 참 묘하게도 길기는 하지만 깊지 않았다.

계단식 논이었던 곳에 흙을 덮고 축대를 쌓아 원래의 지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고, 고급석재로 유명한 마천석이 땅 위로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까만 돌에는 반짝반짝 칠흑 같은 밤에 별이 떠 있는 것처럼 은색의 금속성 점들이 깨알 같이 박혀 있었다. 나는 마치 신기한 운석이라도 되는 듯 그 돌을 하나 주워서 서울로 가져왔다.

주인들은 집이 클 필요는 없고 공사비도 많이 들지 않기를 바라며, 땅에 어울리는 ‘우리나라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 집’이라는 것이 참 묘한 이야기인데, 나는 거창한 해석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그 말을 그냥 ‘편안한 집’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 ‘우리’라는 개념에는 소유나 영역의 의미보다는 친숙함과 편안함이 진하게 배어 있다고 생각한다.

설계를 진행하며 평일에는 시간이 나지 않는 건축주 부부와 주로 밤이나 주말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런 시간의 대화는 당연히 편안하고 즐겁게 진행되었다. 덩달아 설계안도 마치 떡집에서 가래떡이 뽑아져 나오듯 편안하고 부드럽게 나왔다.

누마루는 여름에는 문을 모두 열어 자연의 풍광을 즐기는 정자로 쓰고, 겨울에 문을 모두 닫으면 방으로도 쓸 수 있다.
박영채 제공
# 누마루에 누워 산을 보며 쉬다

설계가 끝나고 집 자리를 잡으러 땅에 갔을 때, 그동안 여러 번 이야기 들었던 인근 실상사에 계신다는 스님 두 분이 와 계셨다. 집터를 소개해주었다는 분들인데, 알고 보니 건축주의 친척이 되는 스님은 덩치가 크고 목소리도 크며 마음은 더욱 커 보이는 후덕한 인상이었고, 또 한 분은 상대적으로 가냘픈, 그러나 매사에 신중한 차분한 인상이었다.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 같았다.

오월 어느 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날이 아주 좋아 지리산이, 특히 천왕봉이 아주 말갛게 세수를 하고 우리를 매초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지리산 천왕봉을 그렇게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며 본 것은 맹세코 그날이 생전 처음이었다. 지리산 주변을 그렇게 뱅뱅 돌면서도 한 번도 그렇게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어떤 인연이 닿았는지 어떤 운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예고도 없이, 어떤 장엄한 팡파르도 없이 천왕봉이 스윽 하며 성큼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주인들과 스님들에게 집 앉힐 자리를 설명했더니 어머니 같은 인상의 스님이 그 방향이 아니라며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여기야”라고 했다. “안산이 저기고 주산은 저∼기…”라며, 스님은 우리 앞으로 펼쳐진 수많은 봉우리 중에서 제일 둥글둥글하고 순하게 생긴 봉우리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집 자리를 고쳐주었다.

看梅聽雨勸人茶(간매청우권인다)/窓前明月請與家(창전명월청여가)

(매화 바라보고 빗소리 들으며 벗 불러 차 마시니, 창 너머 밝은 달이 한 식구 되고 싶어 하네)

매화를 보는 집, 빗소리를 들으며 친구를 초대해 차를 마시는 집, 그리고 창밖의 달도 ‘나도 끼워줘’ 하며 함께 자리하는 집, ‘간청재’. 집의 이름 또한 상량식하는 날 그 스님들이 오셔서 지어준 것이다. 상량식 하는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불그스름한 가사를 두르시고 한 스님이 정중하게 식을 주관하고, 또 다른 스님이 상량문을 물 흐르듯 써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 건너편 지리산에서 왼쪽부터 나란히 서있는 두류봉,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등이 구름 너머로 같이 지켜봤다. 깊고 고적한 산속에서 아주 흐뭇하게 식이 진행되었다.

간청재의 주인들은 처음부터 누마루를 하나 갖고 싶다고 했다. 마치 별을 보는 다락방을 하나 갖고 싶다는 사람처럼, 집안에 고급 싱크대를 놓고 싶다는 사람처럼, 그들은 누마루를 원했다. 입식 가구 대신 소반 정도 두고 책도 읽고 밥도 먹는 좌식 생활로 돌아가는 대신, 바람이 잘 통하고 자연을 사방으로 느낄 수 있는 둥실 떠있는 누마루는 예외적으로 누리는 약간의 호사 같은 것이었다.

단순한 일자로 된 집의 오른쪽 끄트머리에 달린 누마루는 여름에는 삼면을 열어놓고, 멀리서 간혹 얼굴을 내미는 지리산 마고할미인 천왕봉과 눈을 맞출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집 앞으로 삐쭉 튀어나와 마치 사람의 얼굴로 치면 코와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이기도하다. 여름에는 문을 모두 열어 자연의 풍광을 즐기는 정자로 쓰고, 겨울에 문을 모두 닫으면 방으로도 쓸 수 있다. 간청재의 누마루는 이 집에서 전망이 제일 좋은 곳이고 제일 시원한 공간이다.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자연과 직접 만나기 위해 이곳의 땅을 찾았고, 우리는 그 땅에 사람들이 무리 없이 자연의 흐름에 앉을 수 있도록 집을 설계하였다. 그리고 자연과, 또한 자연의 일부인 사람이 “당연하게도” 만나게 되었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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