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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백구 찾다가 동물보호 발 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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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01 21:38:03 수정 : 2014-08-01 22: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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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 임순례 감독 ‘영화감독과 동물보호단체 대표.’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워 보이는 이 두 가지 일을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임순례(54) 대표다. 임 대표는 얼마 전 카라 사무실을 서울 중구 약수동에서 마포구 서교동으로 옮기면서 그동안 미뤄온 일을 벌였다. 5층짜리 건물을 동물을 위한 시설로 모두 채워 넣었다. 유기동물 입양카페, 유기동물 전문병원, 도서관, 동물보호 교육장, 임시보호소 등이 층별로 들어찼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인 임순례 감독이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카라 사무실에서 임시보호 중인 유기견을 돌보고 있다.
남정탁 기자
오는 16일 개관을 목표로 한창 준비 중인 이곳에서 지난달 31일 임 대표를 만났다.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영화를 찍은 중견감독이 동물보호단체 대표를 맡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임 대표는 “동물들과의 ‘인연’과 인도 다람살라에서의 깨달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과 함께 자랄 정도로 동물을 좋아했다. 하지만 한양대에서 연극영화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면서 동물과 떨어져 10여년을 보냈다. 임 대표는 “감독으로서 이름을 알린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막 끝낸 2000년대 초 집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삶이 우울하고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밀려왔다”며 “동물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이 우울감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하얀색 진돗개를 한 마리 들여놓았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백구를 위해 마당이 있는 집을 찾아 경기 남양주와 서울 성북동 등지로 여러 번 옮겨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경기 양평에 있는 넓은 집을 계약했는데 얄궂게도 그날 백구는 집을 나갔다. 임 대표는 동네방네 방을 붙이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어느 날 한 네티즌이 백구와 닮은 유기견을 발견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함께 한성대 입구에서부터 골목골목을 찾아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제보해준 네티즌은 카라의 전신인 동호회 ‘아름품’의 열혈 회원이었다. 

“집 나간 백구를 찾는 과정에서 유기동물의 어려움을 많이 알게 됐다”는 임 대표는 그 회원의 권유로 명예이사를 맡았다. 하지만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수년이 흘렀다. 아름품은 뒤에 사단법인 카라가 됐다.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조각가 강은엽씨가 건강문제로 물러나면서 카라의 대표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사양했다. 7년 만에 찍는 영화 ‘우생순’의 촬영이 막 시작됐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찾은 인도 다람살라에서 인생을 흔드는 말을 듣게 됐다. “아무리 수행하고 지혜를 닦고 깨달음을 추구해도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다”라는 스님의 말이 귀에 꽂혔다. 임 대표는 귀국하자마자 2009년 7월 카라의 대표가 되겠다고 자청했다.

임 대표의 취임 이후 카라는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와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관련 조사 등 활동반경을 넓혔다. 그는 “마침 가수 이효리씨 등 연예인들이 동물보호 활동에 나서면서 회원이 많이 늘어 외형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며 “동물보호법이 유명무실하고 지자체가 관리하는 동물 관련 조례 등이 너무 부실해 이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보면서 연평도 포격 사건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는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사람이 떠난 뒤 버려진 동물들을 보살피기 위해 섬으로 들어갔다. 임 대표는 “전쟁이나 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 동물을 대피시키고 관리하는 매뉴얼이 전혀 없다”며 “전쟁이 나면 동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된다”고 말했다.

올해로 5년째 동물보호단체를 이끌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임 대표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을 먼저 도와야지 왜 동물을 돕느냐는 주변의 시선”이라며 “인권을 넘어 생명권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 구성원”이라며 “동물복지라는 것을 생태계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보호는 애호가 몇 명의 욕구만족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지혜”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농장동물과 실험동물 문제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그는 “농장동물이나 실험동물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고, 야생동물도 동물원에 잡혀와 쇼에 동원되는 등 문제가 많다”며 “앞으로는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시민의식을 높이고, 정부 정책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제보자’의 10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임 대표는 “이번 영화가 잘 마무리되면 앞으로 동물보호나 동물권을 다룬 저예산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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