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부품 납품이 9월이면 끝나요. 이후가 걱정입니다.”
비츠로넥스텍은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엔진 주요 부품을 만든 기업이다. 엔진 연소기, 가스 발생기 등을 제작한다. 누리호 엔진 제작비 약 600억원 중 130억원 상당의 부품을 이 회사가 책임진다. 비츠로넥스텍의 방정석 우주항공본부장은 요즘 시름이 깊다. 2027년 예정인 누리호 6차 발사 부품을 올가을이면 완납해서다. 이후로는 일감이 뚝 끊긴다. 이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리호 제작에 참여한 300여개 국내 기업 상당수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누리호와 함께 첫발을 뗀 한국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가 기로에 섰다. 오롯이 한국의 힘만으로 발사체를 만들어 우주로 쏘아 올렸다는 기쁨은 잠시. 2027년 이후 누리호 발사 일정이 안갯속이다 보니 공백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비츠로넥스텍만 해도 누리호 생산에 직접 관여하는 인력이 40명쯤이다. 고정비는 월 3억원가량이다. 누리호 생산에 투입된 100억원 규모 장비들도 못 쓰면 그대로 녹슨다. 기약 없는 누리호를 두고 다른 사업으로 떠나가면 훗날 우주산업으로 돌아오게 될지, 이 회사 경영진은 요즘 확신이 안 선다. 방 본부장은 “25년간 우주산업을 해왔는데 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됐다”며 한숨 쉬었다.
누리호는 올해 11월 4차·내년 5차 발사에 이어 2027년 6차가 마지막이다. 누리호 다음 세대인 차세대 발사체는 2031년쯤 기술을 개발해 이듬해 쏠 예정이다. 두 발사체 사이 5년이 공백이다. 춘궁기를 못 견딘 기업들이 생산라인을 멈추면 복구는 요원하다. 민간 생태계도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누리호 관련 기업들은 2023년 3차 발사 이후 1년의 공백기를 한 번 겪었다. 에스앤케이항공도 이 기간 누리호 팀이 해체됐다. 4차 발사가 결정돼 다시 팀을 불러모으자 기존 인원 중 절반만 합류했다고 한다.
정부도 이를 해결하려 2028년 국방 시험위성 2기를 한번에 누리호로 보내는 ‘헤리티지 사업’을 최근 마련했다. 다만 올해 예산이 반영돼야 시간표대로 발사가 가능하다. 아직 희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1회의 추가 발사는 임시방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차세대 발사체 사업도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1단 엔진을 재사용 발사체로 바꾸기 위해 기획재정부의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심사를 받고 있다.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누리호든 차세대든 정해진 게 없는 과도기라 불안감이 크다.
세계적으로 우주 개발 주도권은 민간기업에 넘어갔는데 한국은 생태계가 개화하기도 전에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상업우주 시장에 진입할 기회의 창이 언제 닫힐지 모른다. 정부 추산 2030년대 중반 100기 안팎일 한국 위성발사 수요를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민간 우주생태계 육성이 필요하다.
자국 발사체가 부족한 서러움은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6호가 고스란히 겪고 있다. 6호는 2022년 러시아에서 발사 예정이었으나 전쟁으로 어그러졌다. 유럽의 아리안스페이스와 새로 계약을 맺고 발사일을 잡았으나 일정이 수차례 번복돼 아직도 지상에 발이 묶여 있다.
우주항공업계에서는 누리호가 시장 경쟁력을 갖추려면 정부가 공공 수요를 배정해야 한다고 본다. 스페이스X 역시 미국 항공우주국의 수요 창출 덕분에 초기 성장이 가능했다. 방 본부장은 “정부가 방향을 명확히 잡고 우주 기본계획에 맞춰 제때 투자하고 선도해달라”며 “그래야 기업도 비전을 갖고 사람·자본을 투자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