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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파문에 금가는 우방…흔들리는 美·獨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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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20 20:14:18 수정 : 2014-07-21 10: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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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도청·첩보 활동에 뿔난 메르켈
미국과 독일 관계가 급속하게 얼어붙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베를린 지부장을 사실상 추방했다. 유럽에서 스파이 활동 등을 이유로 미국 정보기관 고위관리가 추방된 적은 거의 없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이 “외교적 지진”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세계 주요 외교·군사·경제 현안에서 찰떡궁합을 자랑했던 양국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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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잇단 도청·첩보에 뿔난 메르켈

이번 추방조치는 독일 정보요원 2명이 각각 CIA에 기밀정보 수백건을 넘긴 게 직접적인 계기였다. 슈피겔 등에 따르면 독일 연방보안국(BND)에서 자료정리와 암호화를 담당하는 마르쿠스 에르(31)는 2012년부터 최근까지 오스트리아 빈 주재 CIA 요원에 2만5000유로(약 3400만원)를 받고 내부 문서 218건 이상을 넘겼다. 독일 국방부 방첩부대(MAD)에서 근무하는 레오니트 케(37)도 2010년부터 이메일 등으로 독일 기밀사항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추방조치에 비해 외교 언설은 상대적으로 점잖았다. 독일 정부 대변인은 “(CIA 지부장에 대한) ‘퇴거요구’는 독일 내 미국 정보기관 활동에 대한 의문에 따른 것”이라며 “독일은 이번 사건을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들 ‘이중스파이’가 미국에 넘긴 자료가 70년 역사의 미·독 동맹까지 뒤흔들 정도의 고급정보였는지는 의문이다. 일간 디벨트 등 현지 언론은 BND 국장 일정이나 해외 지부 현황, 총리실 지시사항, 첩보 지침 등의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미·독 ‘이중스파이’ 사건은 지난 1년여간 전 세계를 뒤흔든 미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도청 파문의 연장선이다. 에드워드 스노든 전 CIA 직원은 지난해 6월 NSA가 세계 주요 전화·인터넷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감시·수집하고 있으며 세계 주요 정상들 역시 도·감청 대상이었다고 폭로했다. 스노든 문건을 분석한 슈피겔은 폭로 4개월 뒤인 지난해 10월 미 정보기관이 메르켈 총리의 개인 휴대전화까지 도청했다고 보도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독일은 미국의 해명과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기저에는 미국이 2016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환대서양경제동반자협정(TTIP) 협상 타결의 칼자루를 쥐고 있고 이란 핵문제와 시리아 평화협상 등 각종 국제 현안에서 핵심 중재국인 자국을 마냥 무시하진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깔려 있었다. 일각에선 메르켈 총리의 4월 방미 전 미국이 독일을 상호 간에 감시활동을 하지 않는 ‘파이브 아이즈 클럽’(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 추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독일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공식 사과는커녕 “감청은 첩보의 기본”이라는 NSA 국장의 항변만 돌아왔다. 메르켈 총리가 CIA 추방이라는 초강수를 뒀음에도 백악관이 내놓은 반응은 “미국과 독일의 정보 관계는 양국 안보에 아주 중요하며 외교, 정보, 법무 채널을 통해 독일과 접촉하고 있다”는 언급뿐이었다.

◆냉랭해진 미·독, 경제 분야로 확전하나

미국의 무대응에 독일 내 반미 감정이 들끓기 시작했다. 최근 미 퓨리서치센터의 미국에 대한 독일인 호감도 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9년 64%였던 친미 여론은 올해 51%까지 떨어졌다. 슈피겔의 여론조사(7월6∼10일) 결과는 더욱 신랄하다.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의견이 69%로 최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러시아(75%)와 별 차이가 없었다.

독일 반미 감정의 8할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한다고 슈피겔은 지적했다. 독일인 20여만명이 2008년 미 대선후보 자격으로 베를린을 찾은 오바마를 보기 위해 모인 것은 그가 전임자와는 달리 상식적이고 품격 있는 외교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NSA 도청 파문 이후 오바마 행정부가 인식하는 미·독 관계는 부시 행정부 시절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일인 대다수가 분노하고 있다.

독일은 NSA 파문 이후 유럽만의 인터넷망 구축과 데이터 규제 법안 마련을 주도한 데 이어 최근 미국 최대 통신업체 버라이즌의 정부기관 인터넷서비스 계약을 끝냈다. 이번 CIA 추방조치는 대미 압박의 결정판이다. 미국이 앞으로 독일에 대한 감시활동은 없다고 명확한 답을 주지 않으면 각종 외교·경제 현안에서 독일 또는 유럽의 이해를 최우선시하거나 스노든 망명 허용과 같은 보복조치에 착수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양국이 CIA 베를린 지부장을 ‘정치적 희생양’ 삼아 관계 복원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메르켈 총리는 상대적으로 미국의 불가피한 첩보활동을 이해하고 있는 데다 대미 관계가 냉각됐을 때 치러야 할 안보·경제적 대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 카렌 돈프리드 의장은 “국가 간 관계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며 “서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만큼 접점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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