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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死전 맥끊긴 민족지혜의 심장] 국립국어원, ‘남녀간의 일’ 다시 추가
성중립적 표현으로 바꿨다가 원위치“外風에 오락가락”… 위상·역할 의문
‘사랑이 무엇이냐’에 대한 최근 논쟁은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이하 국어원, 표준사전)의 위상과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랑의 주체와 객체를 ‘남·여’라는 이성의 틀 안에 놓을지를 두고 종교계를 필두로 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은 ‘동성애 장려’ 대 ‘성적 소수자의 권리 침해’로 대립해 왔다. 그런데 표준사전 뜻풀이가 이해단체의 주장, 외부 압력에 오락가락한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국가가 사전을 만들어 ‘언중(言衆)’이 사용하는 말의 뜻과 옳고 그름을 규정하는 데 따른 부작용인 것이다.

이번 논란은 국어원이 지난 1월 사랑에 새로운 뜻을 추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시작됐다. 여러 뜻을 지닌 낱말은 뜻풀이도 사용 빈도나 중요도 등으로 순서를 매겨 여러 항이 제시된다. 사랑을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등으로 뜻풀이해온 표준사전이 지난 1월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을 추가한 것이다.

국어원은 원래 사랑을 남녀 간의 일로 설명하다 2012년 5월 대학생 5명이 “성적 소수자의 권리가 무시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이를 받아들여 그해 11월 ‘남녀 간의 사랑’을 사랑의 뜻풀이에서 뺐다. 그러자 한국교회연합 등 기독교계에선 “국어사전이 사랑의 정의에서 ‘남녀’ 또는 ‘이성’이라는 표현을 삭제해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자 다시 원래의 뜻풀이로 되돌린 것이다. 표준사전의 사랑 뜻 변경은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당장 표준사전과 쌍벽을 이루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웹버전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사랑 뜻풀이에서 뺐다.

민현식 국립국어원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전이 사회현상을 명확하게 반영하는 것이라면 ‘논란이 되는 단어는 좀 더 신중하게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점에서, 언어학적 관점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남녀 간의 사랑을 뜻풀이로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랑의 뜻풀이가 또다시 바뀔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세계적 사전 편찬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외국 사전은 남녀 간의 틀에 사랑을 집어넣은 경우가 별로 없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의 주요 사전은 대부분 ‘어떤 사람(a person)이나 물건을 좋아하고 아끼는 강렬한 감정’, ‘강한 성적 끌림이나 욕망의 감정’ 등으로 사랑을 정의하고 있다.

국어문화운동본부 남영신 회장은 “이해단체들이 바꿔 달란다고 언어 개념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사랑의 뜻풀이를 한 번 바꿨다가 다시 되돌린 것은 처음부터 국어원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처음 바꿀 때 남녀의 사랑으로 국한하지 않고 소수자의 사랑까지 폭넓게 받아들인 것은 발전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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