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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프 첫 공통 역사교과서…150년 앙숙관계 청산

입력 : 2014-06-17 20:49:22 수정 : 2014-06-17 22: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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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 새 시대를 연다] ② 독일·프랑스 세계 첫 공통 역사교과서
獨·佛 '역사의 국경' 허문 교실… 150년 앙숙관계 청산
프랑스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략한 1800년대 초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150여년 동안 독일과 프랑스는 무려 4차례나 큰 전쟁을 치렀다. 양국 관계는 그야말로 ‘앙숙’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다르다. 두 나라는 역사 갈등을 극복하고 유럽의 맹주, 세계 주요국 지위를 사이좋게 유지해 오고 있다. 해답은 ‘역사교육’에 있었다. 끈질긴 논의로 언어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은 역사교과서를 발간했다. 그렇게 탄생한 ‘독·불 공동 역사교과서’는 단순한 교과서를 넘어 앙숙인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고 역사 인식을 공유한 계기가 됐다. 더욱이 세계 최초로 발간된 공동교과서로 동북아시아 등 역사 갈등을 겪고 있는 전 세계 국가에 갈등 해결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시작부터 발간까지 무려 70년


독·불 공동 역사교과서의 시작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역사 교과서는 타국을 묘사하면서 ‘증오’, ‘배신’, ‘숙적’ 등 부정적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독일 교과서도 마찬가지였다. 양국 역사학자들은 자국의 편향된 역사교육이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의 노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중단됐다. 공동 역사교과서 논의는 결국 2차대전이 끝난 지 18년 만에 재개됐다. 계기는 ‘엘리제 조약’이었다. 1963년 1월 독일과 프랑스가 맺은 이 우호조약은 양국 정치·외교 관계의 우애를 다짐하는 동시에 교육 및 청소년 정책에 대한 협력과 관련해 발전적인 내용이 담겼다.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 작업이 본격 궤도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나서다. 엘리제 조약 40주년 기념식이 열린 2003년 1월, 독·불 청소년 의회 학생 550여명은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줄 것을 제안했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이를 수락했다.

양국 정부는 이후 관료와 학자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공동 교과서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교과서 집필자는 각국 5명씩 10명으로 이들은 모두 상대국 언어에 능통한 현직 교사였다. 대표단은 상대국 교과서들을 검토하고 의견을 제출해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협의했다. 이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2006년 7월 세계 첫 공동 역사교과서가 탄생하게 됐다. 공동 역사교과서는 총 1권으로 1945년부터 현재까지 다룬 3권이 가장 먼저 출간됐다. 2008년 4월에는 근대사 부분인 2권(1814∼1945년)이, 2011년 7월 마지막 권인 3권(고대 그리스·로마∼1815년)이 출판됐다.

◆시각자료 활용과 객관적 서술로 열린 해석 가능

역사관이 전혀 다른 두 나라가 역사인식을 공유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어판으로 나온 ‘독일·프랑스 공동 역사교과서’ 3권을 살펴보면 양국이 서로 다른 역사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시각자료를 충분히 사용했다는 것이다. 지도, 사진, 포스터, 당시 언론 기사 등 사료들이 책 내용의 70∼80%가량 차지한다. 이는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일 뿐만이 아니라 객관적 자료를 통해 학생 스스로 당시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각 장에 실린 ‘자율학습의 길잡이’는 ‘오늘날 제2차 세계대전 기념행사들은 어떠한 가치와 교훈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까?’와 같은 열린 질문으로 자기주도적 학습을 유도하고 있다.

본문과 별도로 구성된 ‘집중탐구’는 논쟁이 되는 사안들을 따로 중요하게 다룬다. 예컨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독일 국민과 그들의 과거’ 등이 주제가 된다. 단원의 마무리에는 주요 사건에 대한 연표와 주요 개념,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 목록 등이 제시된다. 주목할 점은 쟁점에 대한 독일과 프랑스의 다른 시각을 그대로 실었다는 것이다. 주요 개념에 대해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영어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의미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또 ‘독일과 프랑스의 시각 비교’를 통해 ‘공산주의’, ‘대미관계’ 등에 대한 양국의 다른 시각에 대해 보여준다.

독·불 우호조약인 ‘엘리제 조약’ 40주년을 맞은 2003년 1월 당시 양국 정상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왼쪽)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 근교 베르사유궁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 사진
◆독·불 40년 우호 노력의 결실


독일은 프랑스와 공동 역사교과서를 편찬한 데 이어 폴란드와 이스라엘 등 역사적으로 갈등을 겪은 국가들과 공동교과서 편찬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한·중·일 등 지역 갈등을 겪는 다른 국가에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에 관한 자문을 해주고 있다.

독·불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독일 게오르크 에케르트 국제교과서연구소에 따르면 실제 이 교과서의 채택률은 높지 않다. 채택하고 있는 학교는 대부분 양국 언어를 모두 사용하는 국제학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불 역사교과서는 역사학계는 물론 국제관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의견이다.

독·불 공동 역사교과서 한국어판 출판에 실무 역할을 담당했던 동북아역사재단의 서현주 박사는 “공동 역사교과서는 채택률과 관계없이 엘리제 조약 이후 40년 동안 독·불 우호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증거”라며 “긴 시간 끊임없는 의견 교류와 역사인식 공유 과정이야말로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밝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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