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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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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5-07 22:13:45 수정 : 2014-05-07 22: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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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에도 교훈 못 얻어
시스템 고치고 국민적 인식 전환, 실천 동반돼야
2011년 8월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허리케인 아이린 북상 소식을 듣고 휴가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아이린 이동경로에 있는 주민들은 대피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곤 바로 백악관으로 복귀했다. 이튿날에는 정부의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인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방문해 아이린 진로와 대비 상황을 보고받았다.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지만 오바마는 끝까지 상황을 챙겼다.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이었다.

원재연 논설위원
지난달 강력한 토네이도가 미국 중남부를 강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필리핀을 방문 중이던 오바마는 보고를 받은 직후 FEMA 청장을 피해 지역인 아칸소주로 급파했다. 현장 상황을 직접 파악하라는 지시였다. 아칸소 주지사에게도 전화를 걸어 중앙정부 지원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귀국하자마자 피해 지역을 긴급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피해 현장에선 FEMA 지휘로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유기적으로 구호활동을 폈다. 재난관리시스템이 즉각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는 이유다.

오바마는 전임자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었다. 전임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때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 있었다. 그는 “충분히 대응 준비가 돼 있다”며 큰소리쳤다. 사고 발생 나흘 후에야 피해 지역을 둘러봤고, 무법지대가 된 뉴올리언스 도심과 이재민 임시수용소는 찾지 않았다. 초기 대응 실패로 재산·인명 피해를 키웠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것은 당연하다.

일본도 다르지 않았다. 6400여명이 숨진 1995년 한신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는 허둥댔다. 지진 발생 사흘째에야 자위대가 구호물품을 수송할 정도로 위기관리 능력이 형편없었다. “야쿠자 조직만도 못하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일본 정부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위기관리시스템을 손봤다. 2007년 3월 한신대지진에 맞먹는 위력의 지진이 중북부 해안지역 노토반도를 강타했지만 사망자는 단 1명이었다. 일본 정부의 철저한 재난 대비가 위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형 참사가 터져도 그때뿐이다. 국민은 네탓을 하면서 씩씩대고, 대통령은 국민에게 머리를 숙인다. 정부가 재난대책을 세운다고 부산을 떠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고는 금세 잊어버린다.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 하나도 달라지는 게 없다. 세월호 침몰 사고 와중에 수도 한복판에서 200여명이 다치는 지하철 추돌사고가 일어나는 게 대한민국이다. 남해와 동해에선 승객 수백명을 태운 여객선들이 엔진 고장을 일으켰고, 대구 케이블카는 급발진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운행을 계속했다. 이런 나라를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선진국 재난관리시스템이라고 완전한 것은 아니다. 자연재해와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인 세월호 참사를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쓰라린 과거의 잘못을 교훈으로 삼는다. 그러고 나서 하나씩 지속적으로 고쳐나간다. FEMA는 해마다 백서를 내고 일본 정부는 재난 관련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정부가 국가안전처를 만든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안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조직이 없어서 대형 재난 대응이 부실한 게 아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지도 않고 기구부터 만들겠다는 발상도 과거와 판박이다. 수많은 어린 학생들의 희생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이제 망각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안전시스템을 뜯어고치고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정부에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안전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과 실천 없이는 불가능하다. 교통규칙을 지키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못난 어른들 탓에 찬 바닷속에서 스러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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