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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재난시스템…‘보여주기용’ 매뉴얼과 대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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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1 19:50:05 수정 : 2014-04-21 23: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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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지적 허술한 재난시스템
큰 일 터질 때마다 법석… 매뉴얼 있어도 손 못쓰고 피해 키워
지난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정부와 선장 등이 우왕좌왕하며 초기 대응에 실패해 최악의 사태를 초래했다.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2시간여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을 보고 국민들의 대정부 신뢰도 함께 침몰했다. 정부는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등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재난관리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993년 10월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이후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정부는 제대로 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난 발생 시 현장에서 신속하게 초동대응을 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복잡한 보고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전대책’ 모르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지난해 2월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핵심 국정기조로 ‘안전’을 내세우며 지난 2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하는 등 재난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안전행정부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해 재난 발생 시 컨트롤타워 기능을 총괄할 수 있도록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하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안행부의 간부들이 재난 대처 경험이 미숙해 초기 대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법 개정을 반대했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됐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하자 중대본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허둥댔고, 10개가 넘는 대책본부가 구성되는 등 사고 수습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가위기관리학회 회장인 노진철 경북대 교수는 “중대본은 오랫동안 재난대응 역할을 주도하던 소방방재청의 인력을 흡수하지 않은 채 조직됐다”며 “긴급 해상 재난상황에서는 현장을 잘 알고 있는 해경 등이 주도해 상황을 끌고 가야 되지만 지휘체계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보고하는 과정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순환근무를 하는 현 공무원 보직 시스템에서는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재난안전’ 업무를 맡고 있어 돌발상황이 닥치면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강남대 김근영 교수(도시공학)는 “지난 2월 법 개정으로 자연재난일 때만 소방방재청이 간사로서 투입된다”며 “인재(人災)로 판명난 이번 사고에 경험이 없는 안행부 2차관이 지휘권을 갖게 되면서 컨트롤타워가 흔들려 여러 가지 오류들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가천대 윤민우 교수(경찰안보학)도 “어떤 부처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인력 배치가 중요하다”며 “하지만 현 정부의 개편안은 부처의 이름만 바뀐 채 인력은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재난상황만 다루는 재난청을 신설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 노 교수는 “이는 행정관리조직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행정조직이 더 늘어날수록 컨트롤타워는 더 복잡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 역시 “새롭게 조직을 개편하는 것에 대해서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두고 고심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가 재난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면서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피해만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세월호 사고 후 정부의 대처능력은 대형 참사가 연이어 발생한 199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사진은 왼쪽부터 전북 부안군 위도의 서해훼리호 침몰(1993년 10월), 서울 성수대교 붕괴(1994년 10월),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6월) 사고 당시의 모습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보여주기용’ 매뉴얼과 대책본부


재난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난상황에 대처하는 법과 매뉴얼 등을 선진국 못지않게 잘 마련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있어 돌발상황이 벌어졌을 때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양욱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정부에는 재난 발생과 관련한 매뉴얼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며 “하지만 기본적인 매뉴얼 숙지도 하지 않고 있어 변수가 생겼을 때 어떤 항목을 어디에 적용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매뉴얼은 물론 잇따라 생기는 대책본부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의 대처 미숙은) 관료주의의 고질적인 암 덩어리가 드디어 터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세대 조원철 교수(토목·환경공학)도 “(세월호 사태를 보면) 매뉴얼은 있지만 안행부 공무원들은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전혀 숙지를 하지 않은 것 같다”며 “매뉴얼을 잘 알고 있는 컨트롤타워를 세우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민우 교수는 “미국과 유럽 국가의 매뉴얼은 100쪽이 넘도록 상황별로 자세하게 모든 사항을 적시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 매뉴얼은 ‘상부 보고’를 위해 한눈에 들어오도록 개요도로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그렇다보니 지휘부가 매뉴얼을 충분히 익히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근영 교수도 “태안반도 등에서 수차례 해양 기름누출 사고를 겪은 뒤 정부는 이를 재난으로 분류하고 2월 법 개정에서도 이를 중대본이 다루도록 명시했다”면서 “하지만 여객사고는 중대본의 매뉴얼에 빠져 있어 이번 사고 때 중대본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상황에 맞는 매뉴얼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희경·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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