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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택과 집중’에도 관심 못 받는 빈곤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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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7 21:01:26 수정 : 2014-04-17 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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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해하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뻔히 보이는데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사회복지 분야에서의 이중 잣대와 논리, 무개념은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아니 지향하고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게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질병 앞에서 빈부격차가 없어야 한다’는 무상의료제도(NHS)에 대한 영국 국민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철학을 부러워하면서도, 건강보험료 인상에 인색하며 민간실손보험 한두 개씩 가입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프랑스의 보육 시스템에 입이 벌어지면서도 부담 없는 공보육 확충을 무상 시리즈 프레임 속에 가둬놓고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몰아붙이는 라디오 논객의 이야기에 솔깃해한다.

하나 더 있다. 무슨 한가로운 보편적 복지냐고, 한 푼이라도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소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도 우리나라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확충하려는 법안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2011년 공중화장실 기거 3남매 보도, 올해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등 굵직굵직한 빈곤 관련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꺼내든 청와대의 카드는 제도적 변화보다는 전수조사, 실태조사였다. 위기상황 발굴 체계 마련은 뒷전이면서 바쁜 복지공무원의 발품에 의존해 몇 사례만이라도 보호망 안에 들어오게 하는 포퓰리즘 덕에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은 충격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입는다.

김진우 덕성여대 교수·사회복지학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기초수급자가 되면 각각의 급여를 다 받는 대신 탈락하면 모든 것을 잃는 불합리와 반찬·생필품 가지 수와 양으로 결정되는 최저생계비 계측 방식의 자의성이 갖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개별급여 방식과 상대적 빈곤 개념을 도입한 법률안이다. 생계, 의료, 주거, 교육급여 선정기준을 다층화함으로써 증가한 소득이 최저생계비 수준을 넘더라도 주거 및 교육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빈곤상태에 안주하려는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한 것이다. 또 급여 선정 기준을 종류별로 달리해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복지정책에의 빈곤계층 사각지대를 줄여 정부 보호망을 보다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아등바등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척박한 이 땅의 경험을 더 이상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여전히 임신, 출산, 육아, 교육, 취업, 질병, 노후 등의 중압감에서 다음 세대를 해방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빈부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눈부신 성장의 과실이 자신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면 무기력과 좌절, 분노만 남게 된다. ‘선택하고 집중’하자고 하면서도 가장 욕구가 큰 빈곤층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이런저런 이유로 미룬다면 보편적이고 선별적이고 간에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인가.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을 우리 사회에 그대로 차용할 요량이 아니라면 좌절의 문턱을 딛고 일어서도록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하며, 이는 법 개정을 통해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허공 속에 떠도는 민생이 아니라 절망 앞에서 촛불처럼 흔들리는 국민(民)의 생(生)존권 앞에 여야의 힘겨루기도, 지루한 논쟁도 뒤로 미루자.

김진우 덕성여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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