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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의 공식' 문제만 수천개… ‘문제 푸는 기계’ 전락

입력 : 2014-04-07 19:02:03 수정 : 2014-04-09 19: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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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에 선 수학교육] (2회) '수학 공포증' 왜?
고교 수학 교과서 문제 94%… 사고·응용력 거의 필요 없어
우리나라 중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푸는 ‘근의 공식’ 관련 문제는 몇 개나 될까.

7일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의 말에 따르면 중·상위권 학생이 중·고교 6년 동안 푸는 문제집은 30∼60권. 근의 공식을 이용하는 2차 방정식 문제가 문제집 한 권당 30∼100개씩 실려 있으니 최고 3000∼6000문제라는 계산이 나온다.

수학칼럼니스트인 박영훈 나온교육연구소 이사장은 “각종 학습지까지 포함하면 근의 공식을 대입해 푸는 문제만 1만 개쯤은 될 것”이라며 “수학의 본질이 아닌 단순한 문제 풀이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수학이 학생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든 것이다.

◆경쟁의 도구가 된 수학

수학 교육이 본질보다는 ‘곁가지’에 비중을 두는 원인은 우리나라 교육의 독특한 구조에 있다. 우리나라 학업 경쟁의 꼭대기에는 대입이 있다. 중학교는 고입을 위해, 고등학교는 대입을 위해 학생을 줄 세워 순위를 매긴다.

변별력 확보의 도구가 된 수학은 중간·기말고사 같은 학교 시험에서 수많은 학생을 낙오자로 만든다. 수원 A고교 김은경(여·가명) 교사는 “시험 문제를 낼 때 가장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수업시간에 하위권 학생을 어르고 달래 힘겹게 공부를 시키고도, 정작 학교 시험에서 그런 아이들을 위한 문제는 한두 문제밖에 출제하지 못하다 보니 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들은 ‘나는 해도 안 돼’라고 한다”며 “작은 성취감도 (하위권) 학생들에게는 동기유발이 될 수 있는데, 그 학생들에게서 몇 년에 걸쳐 성취감을 빼앗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7일 서울 교보문고 중고등학교 수학 참고서 코너에서 학생들이 진열된 문제집 등을 살펴보고 있다. 학생들은 암기형 계산문제를 풀기 위해 중·고교 시절 수십권의 문제집을 푼다.
김범준 기자
상위권 학생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한 학원 관계자는 “(교과서에서 배우기 전의) 선행 내용 문제 출제를 단속한다지만, 학교 시험문제를 보면 여전히 선행과 비선행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문제가 많다”며 “서열을 매기려다 보니 그렇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대입의 주요 전형요소인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라고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대입전문학원을 운영하는 이우성 원장은 “수능과 EBS(교재) 연계율이 70%라고 하지만, 배점이 4점이나 되는 수학 마지막 문항(30번)은 연계가 안 되거나 연계 정도가 아주 낮은 문제가 나온다”며 “이 한 문제를 위해 학원에 다니고, 수십 권의 문제집을 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학 경쟁에서 뒤처진 학생들은 진로까지 바꾼다. 이과계열은 아예 꿈도 못 꾸고, 문과계열에서도 이른바 ‘인서울(in Seoul) 대학’(서울 4년제 대학)은 수학 성적을 요구하는 곳이 많아 서울 소재 대학 중 수학 점수를 안 보거나 비중이 낮은 예체능 계열에 자신들의 미래를 끼워 맞춘다. 고1 여학생 이경진양도 비슷한 경우다. 이양은 “원래 수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수의사 관련 학과가) 이과계열이라 포기했다”며 “대안으로 공무원을 생각하고 있는데 수학이 평균점수를 깎아먹는 상황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암기력 테스트’가 된 시험

객관식과 단순 계산 문제가 너무 많은 것도 수학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요인이다. 풀이과정보다는 결과를, 창의력보다는 하나의 정답을 중시하기 때문에 유형을 공식처럼 달달 외워 기계적으로 풀어간다. 요즘 고교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S와 R 문제집의 경우 1권에 1400∼1600개 문제를 수백 개 유형으로 나눠 반복하도록 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인천의 한 고3 남학생은 “유형을 외워 그대로 풀어도 중간에 계산 실수만 하면 공든 탑이 무너지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생각해서 문제를 푼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며 “문제풀이를 무한반복해야 점수가 잘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 신반포중 서재경 교사도 “수업 중에 A를 알려주고 B를 구하는 문항을 풀어주었다면, 시험에는 B를 알려주고 A를 구하라는 문제를 내는데 그러면 학생들이 안 가르쳐준 걸 냈다고 투덜댄다”며 “이런 불만이 나오는 건 입시용 암기식 학습 탓에 사고력과 응용력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학 교과서부터 사고력과는 거리가 멀다. 서강대 김미희·김구연 연구팀(수학교육)이 지난해 2007년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된 고1 수학교과서 두 종에 나온 문제를 분석한 결과 94%가 수학적 사고를 거의 요구하지 않는 로 레벨(low level)에 속했다. 수학적 개념과 과정, 관계를 탐구하도록 하는 유형의 문제(DM·Doing Mathematics)는 전체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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