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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 고료 제10회 세계문학상] 공동수상작 ‘보헤미안 랩소디’의 정재민씨 인터뷰

입력 : 2014-01-28 20:45:09 수정 : 2014-01-29 09: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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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옥죄어온 어머니의 기대… 그 굴레 걷어내고 싶었다”
날 판사로 키운 모정… 남겨주신 일기장이 새 길 열어줘
세계일보 편집국에 나타난 열 번째 세계문학상 공동 수상자 정재민(37)씨는 대구가정법원 판사였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그동안 대구 포항 등지에서 판사로 근무했다. 외교통상부 국제법률국에도 차출될 정도로 엘리트 코스를 달려왔다. 의사 아내 사이에 남매까지 둔 가정도 단란하다. 겉으로 보기에 아쉽거나 모자랄 건 전혀 없어 보인다.

그가 1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달려온 작품을 세계문학상에 투고한 뒤 발표일이 다가오자 “숨이 점점 막혀왔다”고 했다. 채점해보면 점수가 금방 나오는 대학입시나 사법시험을 볼 때도 이번처럼 떨리진 않았다고 했다.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에 갔다가 잠시 홀로 바깥에 나왔을 때 걸려온 당선전화를 받고는 평소 냉정하다는 소리를 듣는 ‘판사님’도 눈물이 났다. 그날 저녁은 자신의 오랜 수고를 스스로 다독이며 10시간 넘도록 죽은 듯이 잤다고 했다.

전혀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로 하여금 무엇이 문학에 목을 매게 했을까. 그는 이미 ‘포항국제동해문학제’에서 ‘이사부’라는 작품으로 1억원 고료 장편소설에 당선된 이력도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떨리진 않았다고 했다. 역사소설인 전작과 달리 이번 수상작 ‘보헤미안 랩소디’는 자신을 평생 옥죄어온 무의식을 스스로 풀어내는 한판 제의 같은 의미를 지닌 자전적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소설을 완성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성싶었다.

유년기부터 서울법대에 들어가 판검사가 돼서 한을 풀어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며 심한 압박감을 주었던 엄마. 내면에서는 이러한 엄마의 강박에 끊임없이 반발하지만 중학교 때 정작 덜컥 암에 걸려버린 어머니의 뜻을 차마 어길 수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결국 사법시험까지 보게 되지만, 정작 엄마는 자신의 죽음을 아들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고 사법시험 하루 전 숨을 거둔다. 나흘에 걸친 시험이 끝나고 나서야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정씨는 소설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오랜 세월 동안 판검사가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내 입장에서는 광대 옷을 입고 엄마를 위한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러 간 것”이었는데 “관객은 이미 공연을 시작하기도 전에 떠났고 광대는 그것도 모르고 공연을 한 셈”이라고 썼다.

현직 판사로 일하면서 소설을 써온 정재민씨. 그는 “이제는 정말 소설가가 된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편안한 마음으로 완전히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호 기자
정씨는 “본능적으로 나를 억누르는 무의식의 상자더미를 걷어내기 위해 엄마의 일기를 모티브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면서 “10여년 전에 완성시킨 그 소설을 세계문학상에 냈다가 떨어진 뒤 정신분석 과정 등을 새롭게 추가해 이번에 꿈을 이룬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단지 부조리한 사회 문제에서 정의가 이긴다는 정도의 메시지가 아니라 개인뿐 아니라 사회까지도 그 밑에 흐르는 깊은 무의식을 들추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 우울한 내면을 일기로 썼거니와 장례식 때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소설에 대한 생각을 키웠다고 했다.

이번 소설은 주체적인 자아를 찾기 위한 주인공의 행보는 물론 정의를 가로막는 세력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돋보인다. 사기꾼 의사와 맞서 싸우면서 “의료, 법률, 종교, 언론, 정치 등 일반인들이 쉽게 파고들 수 없는 전문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는” 세력의 실체를 예리하게 드러낸다. 특히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서술하는 생생한 에피소드들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을 끝까지 견인해낸다.

주말부부로 살아가는 그는 아침에 일어나 김밥이나 햄버거를 사들고 법원으로 걸어서 출근할 때가 가장 상쾌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9시까지 출근해 결재하고 기록 검토하고 판결문을 쓰는 일과를 보통 저녁 10시나 새벽까지도 진행한다. 주말에도 격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소설 때문에 업무에 지장은 없느냐는 질문에 “골프 치거나 술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본업에 충실하냐고 묻지 않는다”면서 웃었다. 그는 이전에 다른 자리에서 “재판은 숱한 거짓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야 하고 소설은 픽션을 통해 진실을 찾는 일이어서 이 두 가지 일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 적 있다. 그의 오랜 꿈을 이룬 세계문학상 당선은 이제 개인적인 상처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실을 찾아 당당하게 걸어가라는 격려의 훈장인 셈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정재민씨는…
 
●1977년 경주 출생 ●1996년 서울대 법대 입학 ●2000년 42회 사법시험 합격(32기) ●2010년 ‘포항국제동해문학제’에 장편소설 ‘이사부’ 당선 ●대구·포항 지역 법관, 외교통상부 국제법률국 파견 근무 등을 거쳐 현재 대구가정법원 판사 ●장편소설 ‘사법연수생의 자장면 비비는 법’(2004), ‘독도 인 더 헤이그’(200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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