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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철의나명들명] 어디 KT뿐이겠느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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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17 21:17:58 수정 : 2014-01-17 21: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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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초에 KT 집 전화를 해지하게 됐다.

손때가 묻고 무수한 사연이 서린 전화다. 퇴적된 기억의 분량이 소사전 한 권쯤은 될 것으로 짐작된다.

첫 직장 때는 가입신청을 했지만 직장이 사라지다보니 없던 일이 됐다. 신문사 입사 후 전화 가입 재수를 하여 1년 반 만에 번호가 나왔다. 한두 해 기다리는 게 ‘응답하라. 80년대’의 풍속도였다.

가입도 그렇게 힘들게 고랑태(진주 사투리)를 먹이더니 해지는 인권유린 수준으로 사람의 진을 짰다.

‘KT 고객센터입니다’라고 시작되는 그 나긋나긋한 전화가 나를 하염없는 인욕의 캄캄한 터널로 인도할 줄은 몰랐다.

‘…는 1번…는 2번’ 줄줄이 읊어가는 목소리는 언제 끝날지 겨냥을 할 수가 없었다. 해당번호를 찍었더니 2차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는 1번…는 2번…’ 오랜 씨름 끝에 해지 담당 직원에게 연결됐다.

3차 관문이었지만 고생 끝이란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소는 어디고 주민등록번호는 어떻게 되며 이름은 무엇인지 전화번호는 무엇이냐는 인정신문이 진행되었다. 그때 지옥의 문이 그렇게 아가리를 벌릴 줄은 몰랐다.

왜 해지하느냐는 추궁이 잇따랐다. “전화가 필요 없게 돼서”라는 나의 응답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상담원은 내가 중죄인이나 흉악사범이나 된 듯 동일한 질문으로 윽박질렀다.

조병철 객원논설위원
고함을 버럭 질렀다. 내 전화기를, 그것도 30년 내 삶의 증언자이자 동반자였던 전화기를 팔겠다는데. 그 번호에는 내 초년, 중년, 장년의 사회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데. 한밤중에 부장이, 직장 선후배의 득달같은 전화가. 술 취한 시골 친구의 주정이 배어 있는 그 번호를.

그들은 내 애환을 헤아리지 않고 나를 고문했다. 완전히 발가벗기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긴 설전이 끝났구나 싶은 순간은 다가왔는데 돌연 담당으로 돌려드리겠단다. 지금까지는 그러면 뭐라는 것인가. 사람을 희롱해도 유분수지.

한참 지나서 전화기 너머로 담당직원이 나왔다. 저주의 4차 라운드가 막을 올렸다. 인정신문에 이어 본론인 해지사유 추궁에 칼을 빼든다. 필사적 전의가 느껴졌다. 머리에 쥐가 났다. 글을 쓰는 이 새벽에도 치가 떨리고 볼펜이 원고지에 머물지 못하고 혼자서 부들거린다.

군사정권시절, 권위정부시절 서울시내 대로변에서 무시로 맞닥뜨렸던 불심검문도 이보다는 더럽지 않았다.

30년을 마주보고 벌어진 가입과 해지의 고통과 고문의 쌍생아.

나는 외친다.

‘야 이 ××들아, 내 전화기 내가 반납하겠다는데.’

KT만 그러랴.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설치된 소비자 민원센터나 고충위원회, 고객센터 등의 그렇고 그런 기구나 조직은 거기가 거기다. 자신에게 이문을 안겨 주는 일에는 바람처럼 달려오다가도 해지나 반품 등 뭔가 해가 되고 불리하다 싶으면 달팽이나 두억시니를 닮는다.

대대적 수술이 요청된다. 해답은? 인간이 와야 한다.

조병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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