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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명상수행법 '간화선' 세계화의 길] 〈하〉 독참 있어야 깨달음 관문 뚫어

입력 : 2014-01-14 21:13:30 수정 : 2014-01-14 21: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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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들고 선 수행을 해보십시오. 어떤 일에도 상처 받지 않는, 진정한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선 수행은 사람을 아주 당당하고 호방하게 만들어 이러한 힘으로 끈질긴 번뇌도 끊게 하는 겁니다.”

남해 외딴섬 오곡도에 전문 선방(禪房) 오곡도수련원을 차려놓고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을 지도해온 선수행자 장휘옥(64) 원장이 무수한 시간 끝에 깨달음을 얻어 책을 냈다. 그가 펴낸 수행 에세이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이랑북스)에는 오곡도수련원과 일본을 오가며 혹독한 수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러 자유자재한 삶의 주인공이 된 이야기가 빼곡히 실려 있다. 책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고, 감동이 얼마나 컸는지 절로 느껴지게 한다.

“10대 때 대인공포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까지 기도했어요. 지금은 자살 유혹을 받는 모든 분들을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쪽을 잃으면 한쪽을 얻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온 장 원장은 일본 도쿄대학에서 6년 반 만에 불교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대 후반에 모교 교수가 된 그는 어느 날 ‘불교이론가가 참선수행을 병행한다면 대단한 선수행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자 2002년 교직을 접고 오곡도로 들어가 분교를 매입해 수행처로 만든 뒤 참선 수행에 돌입했다. 제대로 된 불교 인재를 키우려는 마음도 컸다. 수련원이 자리를 잡을 무렵 장 원장은 세계적인 불교 수행처에서 수행하기 위해 도반과 함께 길을 떠났다. 먼저 찾아간 곳은 일본 임제종의 대본산 고가쿠지(向嶽寺)였다.

“일본은 대처승이 주류를 이루지만, 임제종에서는 한국의 조계종과 똑같이 비구 스님들이 송나라 때 전통이 그대로 보존된 간화선을 수행하고 있었지요.”

장휘옥 원장은 대인공포증이 심해 자살까지 시도했으나, 이제는 자신과 처지가 같았던 사람들을 구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일본의 대표적 선승 미야모토 다이호(宮本大峰) 방장스님이 지도하는 간화선 집중수행에 참가했다. 장씨는 이어 미얀마에서 남방불교의 위파사나 수행에 매진했고, 프랑스에서는 틱낫한 스님이 이끄는 집중수련에도 참석했다. 스위스에서는 티베트사원을 방문해 그곳의 수행법을 익히기도 했다.

“위파사나도 좋은 수행법이지만, 제게는 치열함이 밴 간화선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고가쿠지에는 독참(獨參) 제도가 온전히 행해지고 있었다. 스승이 제자를 일대일로 만나 수행의 경지를 점검하고 매진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독참은 중국 선종의 전통이기도 했다. 장씨는 다이호 방장 스님에게 10년여 동안 900회 이상 독참 지도를 받았다. 방장스님 자신도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피나는 정진을 했고, 여든이 다된 지금도 시자(제자) 없이 손수 빨래와 청소를 하는 엄격한 수행자였다. 장 원장은 방장스님에게 ‘무(無)’자 화두를 받은 뒤, 일종의 용맹정진인 ‘셋신(接心)’에도 참가했다. 7일 동안 진행되는 셋신은 ‘목숨 재촉’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행이 가혹했다. 이 기간은 방장스님도 잠을 자지 않고 수행자들을 칼날같이 감시했다.

옛 중국 선방 본래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재가자는 나았다. 일본 스님들은 맨발로 수행하며 소매가 긴 내의는 입지 못했다. 추위와 통증, 졸음을 참는 것을 수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것을 목표로 한다면 극기훈련에 불과할 뿐이었다. 더욱 난감한 것은 수행 상태를 점검받을 때다. “왜 독참을 학문적으로 풀려고 하느냐?” “자신은 물론, 하늘 땅 온 천지가 무가 돼야 한다” “그런 상태로는 백년이 흘러도 안 된다”며 수없이 질책을 받았으며, 절을 하는데 갑작스럽게 등짝 위로 죽비가 날아올 때는 얼이 빠지고 분한 생각이 들었다. 그 분함조차도 ‘아(我)’가 남아있다는 증좌였다. 수행자 중에는 ‘한 소식’ 왔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개는 망상분별이요 잘못된 부분에 가 있었다.

“방장 스님은 그런 상태를 꿰뚫어 보시고 올바른 경지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셨지요.”

1년에 서너 차례 오곡도수련원과 일본을 오가며 좌선하는 횟수가 늘어나자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은 사라지고 우주와의 경계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무(無)’자 화두를 참구한 지 몇 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장 원장은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영원과 무한을 보았다. 화석이 된 조개껍데기들이 살아 움직였고, 그곳에 과거-현재-미래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보았다. 마음은 한없이 평온했고, 머리는 맑았다. 그 경이로움은 며칠간 지속됐다. 한 달 뒤 고가쿠지 집중수행에 참가해 그 사실을 전하자, 방장 스님이 “수많은 수행자가 그런 체험을 위해 오랜 세월 목숨을 걸어왔다”며 그를 독참 지도자로 인가했다. 드디어 이론이 아닌 체험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나갔던 것이다.

본래 중국 선방은 바닥에 불기 한 점 없이 냉기가 감돌았다고 한다. 사진은 중국 선방의 원형을 살려내고 있는 오곡도수련원.
“방장스님의 독참 지도가 없었다면 결코 그 관문을 뚫을 수 없었을 겁니다. 혹자는 깨달음의 경지를 묻는데, 그 자체는 의미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지혜와 자비를 갖춰야 해요. 죄를 짓지도 않고, 남의 마음을 아프지도 않게 해야 하지요.”

현재 오곡도수련원에서는 장 원장과 도반인 김사업 부원장의 지도 아래 일반인 10여 명이 화두를 들고 선 수행을 하고 있다. 오곡도를 거쳐 간 사람은 1000여 명에 이른다. 깨달음의 경지에 쉽게 다가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 수행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잡고 많은 생활의 변화를 가져왔다. 좌선과 독참, 울력을 겸한 간화선은 이들에게 집중력과 관대함, 열린 마음을 가져다주었다. 인격도 향상시켰다. 매 순간 전념하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되게 했고, 언제 어디서든지 당당하게 만들었다. 오곡도 수련원에서는 재가자뿐 아니라 출가자도 함께 수행하고 있으며, 이웃 종교인들도 찾아온다.

“한국불교가 간화선을 세계화하려면 독참 제도가 필요합니다. 스님들이 많이 오셔서 익혀갔으면 해요. 배워서 아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장 원장의 저서 ‘새처럼 자유롭게…’에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비롯해 화두를 드는 법, 선 수행을 심화하는 가르침, 독참 지도 사례, 삶을 변화시키는 언어 등이 상세히 담겨 있어 깨달음과 행복의 길을 묻는 이들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돼주고 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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