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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형태 복원은 물론 정신 복원도 중요”

입력 : 2013-11-25 22:16:03 수정 : 2013-11-26 08: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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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호 앞장 ‘예올’ 김영명 이사장 사직단 앞 지하도에는 ‘사직공원’ 방향은 왼쪽임을 알리는 푯말이 붙어 있다. 그 앞 대로에서는 ‘사직공원’이라고 쓴 교통표지판이 눈에 띈다. 사직단을 ‘사직공원’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렇다. 예올 김영명 이사장은 이것부터 확실하게 바꾸고 싶은 모양이었다.

“여기는 ‘공원’이 아니에요. 사직단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공원으로 한 거죠. 일본 사람들이 우리의 맥을 끊으려고 사직단을 폐지하면서 체육시설을 들여놓으면서 이곳을 공원으로 만든 겁니다.”

일제가 사직단을 강탈한 것이 1911년이다. 1922년에는 공원으로 격하돼 지속적인 훼손이 진행됐다. 사직단은 국가의 번영과 백성의 안녕을 빌며 땅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낼 목적으로 조선 건국 직후인 1395년(태조 4년) 만들어졌다. 종묘와 더불어 국가존립과 동일시되던 곳으로 사직단 훼손은 곧 민족정기의 말살이었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바뀌어 동물원 취급을 받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넘었다. 일제 잔재의 청산을 외치며 분기탱천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직단은 ‘사직공원’임을 보여주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김 이사장의 말대로 공원이라는 말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유래가 그렇다면 고치는 게 맞다.

위축과 훼손이 일제강점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방 후에도 일제 때 훼손된 채로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 사직단 대문은 도로 확장 때문에 10m 이상 뒤로 밀렸다. 제사를 지내던 단만 덩그러니 있던 것을 정비해 담장을 두르는 등 지금의 모습을 얼추 갖춘 것이 1988년이었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 문화재 보호활동을 하는 예올은 2002년 이후 사직단 포럼 개최, 복원을 위한 서명운동, ‘사직공원’ 명칭 변경 운동 등 ‘사직단 지킴이’ 활동을 펼쳤다. 26일에는 ‘사직단, 이대로 좋은가? -사직단 복원과 활용을 위한 제안’이란 주제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포럼을 개최한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사직단 주변이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으나 도서관, 파출소, 주민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복원이 쉽지 않다. 이런 건물이 들어서 있는 곳은 제례 준비 공간, 관련 관청이 있었던 곳이다. 사직단 뒤편의 국궁장을 이야기할 때는 김 이사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국궁장의 과녁이 사직단을 바로 등지고 있어요. 화살을 사직단을 향해 쏘게 되는 거죠. 개인으로 생각하면 아버님 산소를 향해 활을 쏘는 겁니다. 생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이잖아요.”

예올은 이런 시설을 이전하거나 정비해 사직단 본래의 경건함을 회복시킬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고 자리 잡고 있는 시설을 무조건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 이사장은 “도서관도 필요한 것이고, 국궁은 보호해야 할 문화다. (관련 기관에서) 대체부지를 확보하고 해결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예올 김영명 이사장은 사직단의 형태 복원뿐만이 아니라 건립 취지에 맞는 정신의 복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문 기자
김 이사장은 형태의 복원이 중요하지만 사직단에 깃든 정신의 복원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신이 중요합니다. 사직단 영역이 보호되어 본래의 경건함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소중하게 보호하고 전승해야지요.” 더불어 인왕산과의 연결성을 회복해 대규모 녹지를 조성하는 ‘생태의 복원’도 제안했다.

문화재에 대한 예올의 관심은 사직단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중의 하나가 ‘훼손 문화재’의 대표 격인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다. 첫 답사지로 반구대를 다녀온 것이 인연이 돼 남편인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과 함께 반구대 보호활동에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카이네틱댐’을 설치해 암각화의 침수를 방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데 대한 의견을 물었다.

“암각화가 상당히 약해져 부스러질 마당이거든요. 댐을 암각화와 거리를 두고 설치한다고 해도 진동 문제 같은 게 있잖아요. 솔직히 불안해요. (논란이 해소되려면) 울산시만으로 어렵고 다른 지역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암각화 얘기를 끝으로 1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사직단을 나오면서 해설사에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냐”고 별 생각없이 물었다. 그의 대답에 김 이사장이 높은 톤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많이들 오세요. 왜 오시냐고 물으면 종묘를 봤으니까 사직단도 봐야 되지 않겠냐고들 하더라고요.” 종묘와 짝해 조선의 정체성을 상징했던 사직단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게 기뻤던 것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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