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재난구호 목적의 긴급파병 때는 정부 결정만으로 가능하다.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도록 1992년 법제화해놓았다. 이후 2010년 아이티 지진 때 2년간 자위대 1900명을 파견하는 등 그간 온두라스, 터키,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활발한 구호활동을 펼쳤다. 미국은 파병 2개월 이내에 국회 동의를 받으면 된다. 그래서 신속한 군 지원이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관련 법률의 미비 때문이다.
국방부는 공병부대와 의료팀으로 400여명 규모의 필리핀 파병 계획을 세워놓았다. 필리핀 요청이 오더라도 언제 갈지 기약이 없다. 한국군은 파병하려면 헌법 60조2항에 따라 국회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니 필리핀은 일본 자위대와 미군에 먼저 파병 요청을 했다.
필리핀은 6·25전쟁 때 군병력 7400명을 파견했다. 피로 우리의 강토와 민주주의를 지켜 준 형제의 나라다. 우리는 두고두고 몇십 배로 갚아야 한다. 지금쯤 한국군은 필리핀 태풍 피해 현장에서 생존자 수색과 긴급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지 못한 데 대해 미안함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이 한시라도 빨리 필리핀 파병을 동의하고, 해외파병과 관련한 법률 정비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한국군은 1993년 소말리아에서 첫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을 시작했다. 현재 청해부대 등 다국적군 파견활동과 아크부대 같은 국방교류협력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그러나 유엔 평화유지활동에만 국한하는 유엔 PKO법 외엔 관련 법률이 없다. 그 밖의 해외파견 활동에 대한 법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해외 구호를 위한 파견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일정기간 내 사후 국회동의를 받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국제사회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할 나라가 돕지 않으면 우리의 대외 신뢰도는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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