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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心淸談] 한국을 동아시아 문화의 허브로

입력 : 2013-10-11 03:46:26 수정 : 2013-10-11 03: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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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문화 주도권 싸움 갈수록 치열
한국이 평화공존 시대정신 주도해야
최근 동아시아 미래문화의 주도권을 놓고 한자문화권의 한국, 중국, 일본의 물밑경쟁이 심상치 않다. 한국은 선조의 동이(東夷)문화가 중국에 주도권을 내준 후 근대 이전까지 대륙에서 발원한 문화를 토착화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그것을 다시 일본에 전해주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 불교·유교문화가 그랬고, 회화·도자문화가 그랬다.

18세기 이후 서구의 근대문명이 동아시아에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일본은 문화의 수수(授受)방향을 역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 패하여 대동아공영권의 구축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한국전쟁을 발판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일본의 패망으로 광복한 한국은 일본이 소화한 서구문명을 나름대로 소화하여 근대화를 달성하였다.

오늘날 한국은 단순히 3국의 교량역할의 수준을 넘어 동아시아 문화의 허브로서 중심 역할을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와 패권적 자세를 고치지 않고 있어서 한국이 허브가 되지 않고서는 이 지역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꿈꿀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중국의 서남공정, 서북공정에 이은 동북공정과 일본의 우경화는 동아시아 평화공존에 큰 장애요소다. 한중일(韓中日)을 연결하는, 동아시아의 EC와 같은 지역경제공동체의 설립이 요구되는 이때에 일본은 왜 거꾸로 ‘독도 영토분쟁’ ‘센카쿠 열도’와 같은 지역분쟁을 일삼으며, 과거 일제 식민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가.

일본 평화헌법의 개정을 주변국에서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것이 시대정신을 역행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베정권은 세계적인 평화무드와 글로벌화하는 인터넷문명의 대세를 외면하면서 군국주의화를 감행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는 부자이고 국민은 가난하다.” 이 말은 과거에는 일본국민의 자랑과 미덕이었으나 오늘날 일본인은 오랜 경기침체와 가난에 지쳐있다. 일본 여성들은 사무라이 시대에 형성된 극도의 남녀불평등을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필자는 ‘중국화하는 일본’이라는 책을 읽었다.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 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일본의 저명 학자로 현재 아이치 현립대학 일본문화학부 역사문화학과 준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요나하 준(與那覇 潤)이 지은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문화 전체를 통째로 싸잡아 비판하고 있는 보기 드문 일본문화비판서이다.

“일본은 에도시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요나하 준씨의 주된 비판이다. 그래서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발전적인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송나라 중국’ 즉 ‘송(宋)나라 문화체제’의 장점을 읽고, 그 쪽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문화의 ‘국가주의와 충(忠) 중심의 사회체제’는 미래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는다.

송나라는 화약, 나침반, 활판인쇄라는 세계 3대 발명품을 서양에 전해준 나라이다. 또 은(銀) 본위 화폐제도와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도입,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고르게 등용했다. ‘송 체제’야말로 동아시아에서 서구보다 먼저 이룩한 ‘근대정신’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송 체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섣불리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에도시대를 거쳐 명치유신으로 일본식 근대화를 이룩했지만 오늘날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군국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중국화=송(宋) 체제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요나하 씨의 반성을 읽으면서 필자는 시종 우리문화를 되돌아보는 감회에 빠졌다. 일본과 달리 한국(고려와 조선)은 요나하 씨가 ‘역사문화 모델’로서 새롭게 부각시킨 ‘송 체제’를 역사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실천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조선은 망하고 일제 식민지가 되었다.

고려와 조선은 과거제도를 실시하고 화폐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주자학과 선종(禪宗)을 도입하여 도리어 과도할 정도로 ‘송 체제’를 정치적으로 실천하였다. 특히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였다.

중국의 송나라가 망한 후 원(元)과 청(淸)나라는 부분적으로는 ‘송 체제’를 차용하긴 했지만 통치는 진취적인 북방문화전통을 중심으로 했다. ‘송 체제’의 인문적(人文的) 난숙(爛熟)은 송을 멸망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송의 주자학과 인문적 경향을 심화한 조선도 관념논쟁에 빠져 백성들의 의식주도 구하지 못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뒤늦게 주장해보았지만 결국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송 체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으로 오늘날 높은 과학기술과 경제대국을 이루었지만 현재 인문적인 송 체제를 갈망하고 있는 반면, 송 체제로 망했던 한국은 인문학을 멀리하고 과학기술진흥과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근대화를 달성한 한국은 오늘날 인문학의 빈곤과 도덕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역사적 아이러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
서구 근대과학문명을 가장 먼저 도입하고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일본은 불행하게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맞은 데 이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또 다시 방사능 피폭이라는 복구불능의 피해를 입었다. 이중의 핵공포를 맞은 유일한 나라가 일본이다.

한때 서구문명의 최대수혜자였던 일본은 오늘날 최대피해자가 되고 있다. 일본은 지금 사면초가에 직면해 있다. 환경은 파괴되어 있고, 경제는 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는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국민들은 고령화로 생산성은 최저치로 몰리고 있다. 항간에 ‘일본 엑소더스’ 풍문마저 떠돌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경제블록 형성에 마이너스 효과를 줄 것이 확실하다. 일본과 중국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비전을 통해 인류의 평화를 구가하는 데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미래에는 국가라는 개념도 희박해질 가능성이 높고,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인류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가부장사회-국가사회의 연쇄는 여성시대-평화시대를 앞두고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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