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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혈세, 구멍 뚫린 감시망] ① 부실공약·심사에 멍드는 나라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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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9-30 01:37:37 수정 : 2013-09-30 16: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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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인건비 인상 쏙 빼고 수익 뻥튀겨도… 주먹구구 “통과”
‘국민은 소시지와 예산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를 때 더 잘 잔다.’ 19세기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남긴 말이다. 나라살림 짜는 과정은 차마 들춰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다는 뜻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표를 겨냥한 선심성 공약과 복지사업이 난무한다.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이 보여주듯 재원대책없는 복지공약은 나라 곳간에 구멍을 내고 국민분열의 씨앗이 된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예산편성·집행 절차로 국민 혈세는 곳곳에서 새고 있다. 세계일보는 반복되는 예산낭비 실태를 조망하고 그 원인을 심층진단하는 시리즈를 5회에 걸쳐 게재한다.


‘비용은 줄이고 편익은 부풀리고.’

취재팀이 입수한 ‘2013년 제2회 지방재정 중앙 투·융자사업 심사 안건’에는 사업심사의 부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내부 문건은 안전행정부가 지난 6월 작성한 것으로 분량이 1470쪽에 이른다. 여기에는 심사에 상정된 64개 사업의 개요와 추진계획, 타당성 조사결과, 재원조달, 실무심사 종합의견 등 세세한 자료가 빼곡히 담겨 있다.

◆편익-비용 비율 1의 마법

이번 심사에서 타당성조사가 시행된 사업은 34개에 이른다. 기이한 것은 이들 사업의 경제성을 따지는 핵심지표인 편익비용(B/C)비율이 1∼2에 대거 몰려있다는 점이다. 5개(2개는 미제시)를 뺀 모든 사업이 이 범위에 있었고 1에 간신히 턱걸이한 사례(1.0∼1.5미만)가 무려 25개에 달했다.

원래 B/C비율은 할인율을 사용해 구한 미래발생 편익의 현재가치를 비용의 현재가치로 나눠 산출된다. 이 수치가 1을 웃돌면 편익이 비용보다 더 많아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지자체들이 너나 가릴 것 없이 고수익 사업을 제쳐두고 편익이 비용보다 약간 웃도는 고만고만한 사업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20여년 경력의 공인회계사 A씨는 “발주처(지자체)로부터 돈을 받는 산하 연구기관이나 건설사무소 등 용역업체의 입장에서는 경제성이 없다는 보고를 내놓기 어렵다”면서 “그렇다고 이 숫자를 높였다가 실제 편익이 저조한 위험도 회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B/C비율이 안전한 ‘1’선에서 짜맞춰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준도 들쑥날쑥

한국경제행정연구원은 지난해 4월 경기도 용인시가 발주한 서농동 주민센터건립사업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맡았다. 연구원은 이 사업의 B/C비율을 0.34로 산정했다. 상정사업 가운데 가장 낮다. 이 사업은 최근 5년간 평균물가상승률 3.4%를 적용해 공사단가를 산출했고 할인율도 3년 국고채금리 연 3.38%로 적용됐다. 비교적 경제상식에 가까운 기준이 동원된 셈이다. 연구원은 주민의 사회적 편익을 내세워 정상 추진할 것을 권고했지만 이번 심사에서 재검토로 퇴짜를 맞았다.

경기 신분당선 미금환승역 추가설치사업은 전혀 딴판이었다. B/C비율 분석에서 2017년부터 2056년까지 연간 18억5900만원의 운영비가 계속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다. 39년 동안 인건비가 단 한 푼도 오르지 않고 물가도 전혀 변동이 없다는 뜻이다. 그 사이 편익은 2017년 49억4400만원에서 2036년 118억9900만원으로 불어나고 그 이후 10년간 동일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다. 비용은 줄이고 편익은 부풀렸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이 사업의 B/C비율은 1.02로 산정됐고 심사에서는 조건부 판정을 받았다. 부산 금강공원 재정비(B/C비율 1.047), 대전 안영생활체육시설단지조성(〃 1.11) 등 상당수 사업도 비용 추정방식이 유사했다.

할인율도 사업마다 3%에서 9%까지 달랐고 분석기간 역시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54년까지 편차가 심했다. 상당수 사업은 아예 B/C비율 산정기준조차 적시하지 않았다. 기준은 들쭉날쭉했어도 ‘B/C비율 1’이라는 결론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부실한 심사

지자체들은 재심사·재상정과정을 거치며 사업비를 늘리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21개 사업의 사업비가 변경됐고 2곳을 빼곤 모두 증액됐다. 부산시의 금강공원 재정비사업은 한 차례 재심사를 거쳐 케이블카 등 현대화사업 확충 여파로 사업비가 297억원에서 1890억원으로 6배 이상 불어났다. 전북 정읍시는 2003년부터 내장산리조트 관광지조성사업을 시작하면서 2004년, 2006년 두 차례 심사과정에서 총사업비를 1701억원에서 2545억원으로 늘렸다. 이번에는 다시 3227억원으로 불어났다. 경남 사천시 바다케이블카 설치 등 나머지 사업들도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사업규모 확대 등을 이유로 예산이 증액됐다.

문제는 미심쩍은 타당성 조사와 사업비 증액에도 정부가 아무 이의나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64건의 투·융자심사에서 타당성 조사결과가 빠짐없이 정상추진으로 나왔고 심사에서는 이 결과를 그대로 수용했다. 중앙정부의 사업심사에 큰 구멍이 뚫린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앙심사위원은 “타당성 조사에 문제가 많지만 여러 시나리오에 따라 비용이나 편익추정이 달라지는 만큼 문제 제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나기천·조병욱·김예진 기자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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