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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그림토크] 전통을 다시 생각한다

입력 : 2013-09-26 22:05:24 수정 : 2013-09-26 2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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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절지’ 그림에 현대적 감각 더해 명절 때만 되면 나는 슬그머니 도망을 갔다. 집에서 멀면 멀수록 왠지 해방감도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도망칠수록 마음은 편치 않았다. 준비할 명절 음식에 질려 나도 모르게 줄행랑을 친 것이다. 밖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내내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에게 미안했다. 괜히 친구들과 함께 “한국 여자들은 너무 힘들다”는 등 명절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어렸을 때, 명절은 모든 것이 즐거웠다. 새옷을 입고 할머니가 준 맛난 음식을 손에 들면 세상은 너무 행복했다. 이제 나도 엄마를 도와 명절 음식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 어느 순간 즐거워야 할 명절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음식을 준비하다보면 왠지 우리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4인 가족이 먹기에 준비한 음식의 양이 너무 많고, 비만을 걱정하는 현대인에게 한꺼번에 높은 칼로리를 제공했다.

명절 차례상을 현대인에게 맞게 고치면 어떨까. 햄버거, 피자, 탄산음료 등 서양 패스트푸드로 차례상을 마련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명절 차례상에 담긴 정신은 그대로 이어가면서 음식 종류를 현대인의 트렌드에 맞게 바꾸자는 것이다. 명절 음식이라고 전 국민이 같은 것을 준비하고 먹을 필요는 없다. 각자 자신의 체질과 식성은 물론 건강 상태에 맞춰 음식을 만들어 조상님께 감사하고 우리도 즐기는 산뜻한 축제가 되면 어떠냐는 말이다.

우리가 ‘전통’이라 말하는 것은 죽은 화석이 아니다. 전통은 조상들이 대대로 이 땅에 살았던 당시에 맞게 끊임없이 현대화 과정을 겪었다. 따라서 우리 또한 전통을 우리 시대, 현대인에 맞게 고쳐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때와 상황에 맞게 변화하고 생존하는 것이 우성인자다. 옛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이 시대에 온다면, 그들 또한 전통을 오늘에 맞게 변화시킬 것이다.

전통 회화 가운데 옛것을 소재로 멋을 낸 것이 ‘기명절지(器皿折枝)’ 그림이다. 한 화면에 진귀한 옛날 그릇과 꺾은 화초의 가지 등을 그렸다. 기명 그림은 청동기처럼 진귀하고 오래된 그릇을 그린 것이고, 절지 그림은 예쁜 꽃나무의 꺾인 가지를 그린 것으로 나무의 전체보다는 아름다운 부분만을 극대화한 그림 양식이다. 기명절지 그림은 기명과 절지를 합쳐 그린 것으로, 옛것을 숭상하는 선비들의 생활 속 ‘미(美)’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김현정의 ‘신기명절지’(종이에 채색)
나는 2013년 ‘추석 기명절지’ 그림을 그렸다. 기명절지 그림은 옛것을 즐겼던 선비들의 정신적 산물이다. 나는 기명절지 그림에 전통 명절인 추석을 즐기는 현대인의 감성을 가미하여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신(新)기명절지’를 창작했다. 기명절지 그림에 서양 정물화의 명암과 배치를 더하고, 내면아이 랄라를 소중한 그릇으로 표현했다. 예술은 생활에서 나왔지만, 예술적 가공을 거쳐 생활보다 더 높은 예술적 경지를 이룬다. 

김현정 배우·화가 www.kimhyunjungtal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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