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현상 지속 불가피 2017학년도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틀은 인문계(문과)와 자연계(이과)의 융합 정도에 달렸다. 교육부는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2002년 이후 공식적으로 문·이과 개념을 없앴지만 현실적인 장벽은 그대로라는 판단에 따라 이를 보완할 방안을 10월까지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가 구상 중인 안은 현행 골격 유지안, 문·이과 일부 융합안, 문·이과 완전 융합안 3가지다. 교육부는 이 가운데 현행 골격을 유지하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되, 2개월 동안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대안이 있으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제도적인 변화가 거의 없고, 현재 고교 교육과정의 안정성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문·이과 장벽을 허문다는 취지와는 가장 거리가 멀다. 이공계 진학 기피현상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문·이과 일부 융합안은 국어와 영어는 단일시험으로 내고, 수학은 수학Ⅱ·미적분Ⅰ로 구성된 공통과목을 설정하되 미적분Ⅱ, 확률과통계, 기하와벡터 중 1과목을 선택하게 한다. 탐구영역은 문과생의 경우 사탐 2과목+과탐 1과목, 이과생은 과탐 2과목+사탐 1과목을 선택한다. 융·복합적 학습에 일부 기여하면서 교육과정 운영 시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무관하게 쉬운 선택 과목만 골라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과생의 수학 학력이 전반적으로 낮아질 우려가 있다.
문·이과 완전 융합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국어, 영어는 물론 수학, 사회, 과학에서도 문·이과 구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수학은 수학Ⅱ·미적분Ⅰ·확률과통계 범위 안에서 단일시험으로 내고 사회는 사회와 지리교과 내용을 포함한 공통사회, 과학은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을 포함한 융합과학의 형태로 출제한다. 이 안은 급격한 제도 변화에 따른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크고, 일부 융합안과 마찬가지로 이과생의 수학 실력이 저하될 수 있다.
문·이과 융합은 우리 교육계가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문과생은 과학, 이과생은 사회를 아예 외면하는 학문적 편식이 갈수록 심해지는 데다 계열 구분 없는 융합인재를 기르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를 이끌 인재 양성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은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다.
서남수 장관은 27일 브리핑에서 “(융합안은) 수능 체제를 상당히 많이 변화시키는 내용이어서 처음 논의될 때부터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전제한 뒤 “문·이과 통합 문제는 이 시점에서 공론화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제도 안정성도 문제거니와 특목고나 자율형사립고 선호 현상이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어고는 문·이과 융합 시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힌다. 교육부는 최근 일반계고를 강화하기 위해 외국어고가 이과반이나 의대 준비반을 운영하면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융합 교육이 시작되면 외국어고에서 이과 수업을 하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문·이과 구분을 없애면 외국어고 학생이 얼마든지 의대나 자연대를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외국어고가 지금보다 입시에서 더 유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육부는 다음주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권역별 공청회를 열어 의견수렴을 거쳐 10월 중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서 장관은 “지금 시안에 나온 세 가지 안 외에도 국·영·수는 일부 융합안, 탐구영역은 완전융합안 식으로 제3의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고 여러 가능성을 남겼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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