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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사교육 광풍] 어른 욕심에 내몰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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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05 02:19:30 수정 : 2013-08-05 20: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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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학습 스트레스… 공부에 ‘진저리’
자존감에 상처입고 정서불안·우울증으로
지난달 25일 서울 목동 학원가 사이에 위치한 A소아정신과. 엄마와 자녀로 보이는 세 쌍이 띄엄띄엄 앉아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게임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열 살난 아들과 함께 온 이모(44·여)씨는 “다섯 살 때 놀이학원을 보내고 여섯 살부터 2년간 영어유치원을 보냈는데,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면서 “감정조절을 못하고 참을성이 없어 가족들과도 소통이 잘 되지 않아 걱정돼 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소수정예로 돌봐주는 놀이학원에서 선생님이 모든 것을 다 해줘서 그런지 아이가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놀이학원을 보냈던 것이 후회된다”면서 “비슷한 상황에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대안학교로 전학간 아이도 있다”고 전했다.

다음날 찾아간 서울 강남의 B소아정신과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한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14살 나를 구해줘’라는 책을 읽고, 초등학교 4∼5학년으로 보이는 두 딸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수학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엄마가 진료실에 들어가자 어린이들은 잽싸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고,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이 병원에 다니는 지윤(가명·7세)이도 주의력 산만과 학습거부 반응 때문에 이곳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6살 때부터 주변 친구들을 따라 영어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입소문 난 더 비싼 영어유치원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지윤이는 짜증이 늘고 또래 친구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는 아는 답도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고, 미술 치료를 할 때도 그림을 그리다 지우기만 반복했다.

지윤이 주치의는 “영어유치원 스트레스로 밤에 오줌을 싸는 야뇨증이나 똥을 지리는 유분증 등에 걸리는 아이들도 있다”며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너무 많은 것을 억지로 시키면 아이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 학습의욕이 더 떨어지고, 정서불안과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 C소아정신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준오(10)도 과도한 사교육 때문에 공부를 아예 거부하고 엄마와의 관계가 나빠졌다.

매일 오후 10시까지 학원을 다닌 준오는 이미 중학교 1학년 영어와 수학 진도를 끝냈지만, 얼마 전부터 책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게임에 심취해 방문을 잠가버렸다. 엄마에게 대들거나 짜증을 내는 횟수가 잦아졌고 심지어 욕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취재진이 강남과 목동 일대 소아정신과와 상담센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학습능력은 뒤처지지 않지만 주위가 산만하고 친구는 물론 엄마와도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학교 규범이나 단체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버거워했다.

연세누리소아정신과 이호분 원장은 “아이들은 연령대에 맞는 지적인 자극뿐 아니라 정서적·사회적 자극이 균형 있게 필요한데, 지적인 성취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부모들이 많다”며 “남들 다 한다고 너무 일찍부터 이것저것 시킬 게 아니라 내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어떤 자극이 필요한지부터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미·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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