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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사교육 광풍] (상)출생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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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05 02:19:55 수정 : 2013-08-05 2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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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만 뒤처질라” 생후 백일도 안 돼 수백만원 교구 ‘덜컥’
0세부터 2년간 홈스쿨에 500만원…"두 돌엔 한글, 세 돌엔 영어" 정설로
6년 전, 생후 100일 된 아들을 둔 심영은(현재 37·여·가명)씨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유명 교구업체의 영업사원이었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적어낸 주소를 보고 찾아온 이 영업사원은 “이제 아이에게 교구를 선물할 때”라는 말을 하더니 가져온 교구를 보여줬다. 심씨는 가격이 100만원이 넘어 일단 그를 돌려보냈지만, 교구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당시 심씨가 교구 구입을 망설이는 것을 눈치챈 다른 교구업체 직원은 그를 한 가정집에 데려갔다. 좁은 집인데도 온갖 교구가 시리즈별로 아이 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심씨는 ‘아이를 위해 이렇게 신경 쓰는 집도 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무심했구나…’라며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고민을 접고 100만원이 훌쩍 넘는 1단계를 구매했다. 태어난 지 갓 100일이 지난 심씨의 아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렇게 사교육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심씨의 아들은 두 돌이 되면서부터는 한글 학습지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가 ‘한글은 두 돌부터 해야 한다’는 광고 문구를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어차피 할 거니까…”란 생각에 영어 학습지까지 한꺼번에 구입했다. 영어 학습지 교육은 방문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심씨의 아들은 거부감이 심했다. 영어 방문교사가 오면 질색을 하고 숨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심씨는 두 돌에는 한글을, 세 돌에는 영어를 시작해야 한다는 속설을 믿고 밀고 나갔다.

어린이집을 보내다 다섯 살 때에는 놀이학교를 보냈고, 집에서는 전집을 읽혔다. 놀이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사의 세심한 돌봄이 마음에 들었다. 전집은 좋은 책을 골라줄 자신이 없어 유명하다는 전집을 종류별로 샀다. 내 아이가 읽을 거라는 생각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씨는 우연히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을 알게 된 이후로는 앞뒤 가리지 않고 아이를 사교육에 맡기는 일은 줄었지만, 앞으로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울 자신은 없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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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에서 학원까지… ‘사교육 순례길’

심씨의 아들 사교육 코스는 0∼7세 영유아를 기르는 우리나라 부모가 밟는 전형적인 경로다.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입학’으로 이어지는 공교육 코스 밖에는 부모의 불안감을 먹고 자라는 드넓은 사교육 시장이 펼쳐져 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가는 순간부터 사교육 업체의 정보망에 포착된다. 모빌만들기와 헝겊인형 만들기 등 사교육 업체의 ‘맛보기 서비스’가 산모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이르면 생후 100일부터 시작되는 교구는 비용부터 사교육 시장이 만만한 곳이 아님을 알려준다. 0세부터 2년 동안 진행되는 P교구 시리즈는 교구와 교재, 홈스쿨비를 포함해 500만원가량 든다. O사의 유아 대상 교구 홈스쿨은 4년 과정에 595만원, 0세용 1년 과정 M교구 홈스쿨 프로그램도 130만원 정도다.

아이가 서너 살쯤 되면 학습지와 학원이 기다리고 있다. 영유아 학습지는 초등학교 교과 선행학습이 대부분이다. 최근 사걱세 조사 결과 166개 상품 중 110개(66.7%)가 국어와 영어, 수학 위주 프로그램이다.

놀이학교와 유아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도 모자라 최근에는 모국어와 영어, 중국어까지 가르치는 삼중언어 학원도 등장했다. 경기 분당의 한 삼중언어학원은 “아직 한국말도 서툰데 영어와 중국어 학습이 가능하겠느냐”는 물음에 “외국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기 때문에 2년 이상 다니면 영어는 라이팅(쓰기)하는 수준까지, 중국어도 기본 의사소통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홍보 문구는 체험수기를 타고

사교육 시장은 늘 확신에 차 있다.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부모의 심리를 이용해 ‘무의식적 흡수기인 0∼3세에 오감 자극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이끌어낸다’거나 ‘다중지능 이론에 입각해 생의 초기에 모든 지능을 고루 발달시킨다’는 문구로 유혹한다.

사교육 업체의 홍보문구는 체험단과 영업사원의 말을 타고 전파돼 입에서 입을 거쳐 부모들에게는 거의 정설처럼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육아정보 온라인 카페가 큰 역할을 한다. ‘저희 아이 네 살인데 ○○1단계 괜찮을까요?’라고 누군가 질문하면 ‘저희 아들 세 살인데 2단계 해요’란 댓글이 달리고, 그 밑에는 ‘저도 세 살에 시작해서 지금 2단계 끝나가요’란 말이 경쟁적으로 따라붙는다.

‘한글은 두 돌 때 시작해야 가장 효과가 좋다’거나 ‘다섯 살 이전에 영어를 접해야 뇌에서 이중언어를 받아들인다’는 검증되지 않은 설이 육아상식인 양 전파되면서 부모들에게 국어와 영어, 수학 중심의 선행학습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된다. 영유아 사교육 시장이 번창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네 엄마들 모임’이다. 6살과 4살난 두 딸을 둔 김가은(가명·여)씨는 “다섯 살 전에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려고 했지만 주변 친구 엄마들이 팀을 짜자고 해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씨의 큰딸은 네 살 때 국어와 영어, 사고력 학습지부터 시작해 지금은 미술과 발레, 가베까지 하고 있다.

사교육에 깊이 발을 담갔다고 불안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김씨는 딸이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우물안 개구리가 될까봐 초등학교 입학 전 지금의 서울 봉천동에서 부모들의 교육열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소문난 경기 분당이나 판교로 이사할 계획을 갖고 있다.

영어유치원 원아 부모는 수학과 과학이 뒤처질까봐, 일반 유치원 원아 부모는 영어가 떨어질까봐 사교육 시장을 떠나지 못한다. 이런 불안은 공교육 불신에서 비롯된다. 심씨는 “학교는 평가를 위한 곳이지 우리 아이를 위한 곳이 아니다”라며 “(아이가 평가받기 전에) 가르쳐서 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미·윤지로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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